개방시대의 국가경영, -개방시대의 법, 제도 그리고 의식-,
매일경제신문(매경포럼), 1994.12.12.(월), 1, 5면

(1994.12.9.10:00 孫學圭 국회의원, 李載厚 김․장 변호사, 宋相現 교수)
세계화논의는 1989.秋 동구사회주의경제몰락으로부터 본격화.
과거: 종래에는 법의 역활이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관념,즉 법은 집권자의 통치수단,각개 민족이나 국가간의 윤리도덕규범에 기초하여 성립하고 타당성보유,즉 법의 비보편성 내지 국경에 따른 한계.
변화하는 현상인식: 1) 사회주의체제 몰락으로 세계가 시장경제체제로 통일되어 전 지구경제의 시장경제화; 2) 교통통
신정보기술의 발달로 지구촌화되어 여러가지 지역적 차이점과 한계극복가능. 따라서 새로운 공통성있고 보편성을 갖춘 국제규범형성과 그에 따른 국내법령제도의 일치필요.
할 일: 전세계가 단일체제의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이 거대하고 새로운 판에서 국가, 기업,개인등 활동주체에게 법률적 틀을 제공하고, 그 놀이마당에 맞으면서도 공정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 경기규칙을 제공해야 한다.그래야만 활동주체들이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가지고 국가목표를 추진하고 투자계획을 실천하고 번영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기회를 놓치면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엄청나서 회복불가능이다.
법의 목적은 인류의 번영과 세계평화이다.
정부의 세계화는 국가경쟁력강화를 중심으로 한 경제경영쪽부터 손대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법과 제도의 세계화를 통하여 최종 완결된다.
그런데 의식개혁은 국민일반의 뒤떨어진 의식도 문제이고, 정부고위정책당국자들의 법경시생각도 아울러 개혁이 필요하다. 법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만 핑게하는 대상이 되어왔다.
토론 내용 :
사회 : 최근 김영삼대통령의 세계화선언 이후 정부조직개편이 단행되는 등 앞으로도 법과 제도의 많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오늘 매경포럼에서는 법을 만드는 입장인 손학규의원, 법을 적용하는 편에 있는 이재후변호사, 법을 가르치는 송상현 교수 이렇게 세분을 모시고 「개방시대의 법과 제도 그리고 의식」에 관해 토론을 갖고자 합니다.
먼저 이 시대에 법과 제도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기존법과 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환경적 요인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이재후 변호사 : 개방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입니다. 세계화란 그런 면에서 개방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능동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이로 인해 사회 각각의 주체가 세계전체와 직접 경쟁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어 경쟁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 되고 있는데 그 핵심이 바고 법과 제도의 개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법과 제도는 위정자가 일방적으로 국민을 끌어가기 위해 「제조」한 측면이 많습니다.
정부주도의 경제성장시대에는 그같은 타율성이 양해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간중심의 자율과 경쟁촉진을 대전제로 법과 제도를 바꿔 나가야지요.
송상현 교수 : 종래에는 법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즉 법은 집권자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되어 왔고 개별민족이나 국가의 윤리, 도덕 , 규범 등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특정공간 내에서만 통용된다는 「폐쇄성」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화가 이걸 바꾸고 있어요. 蘇, 동구의 몰락 이후 세계가 단일시장체제로 급속히 통일되고 있으며 여기에 교통 통신 정보기술 등이 가세, 전 지구적 보편성이 형성되며 법규범까지 닮아가는 「법의 탈 국경」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국내적 틀에 안주해온 우리 법과 제도가 세계적 틀에 적응해야 함을 뜻합니다. 거대하고도 새로운 하나의 판을 짜는 세계규범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국내 법제 또한 세계적 보편성을 지향해야지요.
손학규 의원 :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3단계의 근대화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차 근대화는 19세기말 개항기로 서구문물의 유입결과 왕조사회가 붕괴되고 근대국가적 행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근대화는 산업화가 본격추진된 60-70년대로 경제발전을 국가의 최대목표로 설정하고 국민을 통합시킨 기간입니다. 여기에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등 반대급부가 있었지만 현대적 국가의 틀을 갖추는 계기가 된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다음 3차 근대화의 과정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세계화로 상징되는 이 시대는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화, 지방화의 물결과 함께 탈근대민족국가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보화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회되며 중앙집중형 관주도형 폐쇄적 중상주의국가는 입지를 잃어가고 있어요. 아직 통일주권국가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근대화와 탈근대화의 커다란 숙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법과 제도는 그같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반영하는데서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송교수 : 법을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시대에 법이 갖고 있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몇가지 덧붙이고 싶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전세계는 지금 하나의 거대단일시장을 형성하며 새로운 판을 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같은 새로운 「놀이마당」의 틀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법입니다. 마치 좋은 놀이를 위해서는 멍석을 깔아주듯이 법은 「리걸 프레임(Legal Frame)」 즉 법률적 틀을 제공함으로써 무질서의 세계를 질서의 세계로 유도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법은 또한 경기규칙을 만들어 줍니다.
놀이마당에 걸맞으면서도 공정한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게임의 법칙(Rule of Game)을 공유토록 하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면 보호받고 법을 어기면 손해를 보는 약속체계를 통해 개별 활동주체들이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법은 인류가 만들어낸 평화와 번영의 수단중 가장 훌륭한 안전장치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국제사회에 법이 없다면 어떻게 서로 믿을 수 있는 계약과 거래가 존재하겠습니까. 법은 세계화시대의 가장 신뢰할 만한 커뮤니케이션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 : 새로운 환경변화에도 불구, 우리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의 개선 및 개조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손의원 : 아까 3차 근대화라고 표현했습니다만 지금의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는 개혁차원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쥐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민에게 이를 돌려주겠다는 사고전환이 요청되는 시대라는 거지요. 수직적으로는 정부에 몰려있는 권한과 권력이 민간으로 이양되어야 하며 수평적으로는 중앙집중에서 지방분권으로의 이전을 뒷받침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통제중심의 법과 제도도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일대 개편되어야지요.
국민적 공감을 사고 있는 규제완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완화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규제폐기라는 적극적 발상전환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유경쟁체제의 촉진에는 반드시 뒤따라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정성입니다. 공정한 거래질서, 공정한 경쟁풍토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사회가 바로설 수 없는 것은 물론 시장경제가 자랑하는 효율성도 궁극적으로는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 앞서간 나라들의 일치된 경험입니다.
최근 정부조직개편에서 나타나듯 공정거래질서를 위한 정부의 기능은 「작은 정부」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효율성과 공정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과 제도개혁의 핵심적 과제라고 믿습니다.
이변호사 : 지켜질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반 생활인 또는 평균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담은 법은 결국 예외를 양산하게 되고 편법과 탈법을 부채질하게 마련입니다. 법은 일단 만들어진 이상 엄격히 집행되어야 하는 것을 그 생명으로 하는데 우리의 법현실은 안타깝게도 여기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아요.
개인의 양식이나 자율에 맡겨야 될 분야를 국가가 세세히 간여하고 규제하는 법률도 무수히 많은 실정이고 현수준에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희망사항형 법률도 부지기수입니다. 예컨대 노동이나 환경관련법은 세계최고수준을 자랑하지만 우리 경제사회의 발전수준을 감안하면 준수하기에 벅찬 분야가 많습니다. 취지야 좋지만 지키고 싶어도 못지키니 오히려 편법과 타협이 조장된다는 것입니다.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권리를 실제에 있어서는 국가가 무시하는 경우도 있어요.
공급자 위주의 법도 문제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인감을 증명한다」는 인감증명법의 경우 우리나라와 일본만 갖고 있는 제도입니다. 지나치게 번거롭다는 여론으로 인해 이 법이 개정된 적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사용자의 편익은 사실상 고려하지 않고 인감증명의 용도와 기간에 관한 부분만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고치는 시늉을 한 것이지요. 생활인 소비자의 입장에선 고객중심의 입법이 절실한 때입니다.
송교수 : 제재위주의 법과 제도를 인센티브촉진형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지나치게 채찍중심으로 되어있어 법에 대한 국민적 감정도 두려움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법체계는 법을 잘 지키면 여러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는 당근형 구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법을 실시하기 이전에 이에 대한 과학적인 비용효과분석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처벌과 규제위주의 법이 양산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입법주체가 관료 등 행정부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하나의 법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의회를 중심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국민적 의사수렴 및 이해당사자의 의견조정과정을 심도있게 거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아예 이것이 생략될 때가 많아요.
하급공무원이 적당히 자기부서의 입장을 감안한 법안을 기안해 내부통과되면 법제처에 넘겨 문구를 고치고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심지어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대통령령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물론 결과의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은 절차적 민주성 아니겠습니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법과 제도개혁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를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이냐는 프로세스의 문제에도 깊은 각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 : 그렇다면 누가 어떤식으로 법과 제도개혁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손의원 :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다시한번 자책감이 드는 순간입니다. 흔히 근대국가는 행정국가라고 합니다만 우리의 경우 국회의 입법능력이 지나치게 취약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관료가 주인인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만들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의미의 법과 제도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회는 민의를 총체적으로 수렴하는 장인만큼 그같은 주인찾아주기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으로 봅니다.
더욱이 문민시대를 맞아 국회활성화이 장애물이 사라진 마당에 더 이상 입법능력의 취약을 핑계삼을 수도 없게 됐지요. 최근 국회제도개선으로 인해 입법지원시스템 등이 보강되고는 있지만 앞으로 국회는 전문성과 책임성 제고를 통해 명실상부한 법의 산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유권자인 시민이 함께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변호사 : 최근 의원입법의 수준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원에서 상당히 향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고문적인 일이지요.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위임입법의 문제점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행정부는 정작 중요하고 미묘한 사안은 모법이 아니라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에 두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법률로 규정될 내용이 부처내규에 정해진다면 주관적 판단과 자의적 행정으로 흐르기 쉬운데도 국회에서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넘겨버리는 사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세계화시대를 맞아 법제처가 추진중인 법제도개편안만 해도 5백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국민적 총의가 보다 잘 담기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사회 : 법과 제도의 개혁 못지않게 국민의식과 관행의 혁신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세계시민육성론을 펴기도 하는데 새시대를 열어가는 국민적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송교수 :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먼저 정부고위정책결장자를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의 법경시 풍조부터 근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결단이나 타협, 국민감정 등을 이유로 윗사람들이 앞장서 법을 무시하고 위반해온 우리 헌정사의 과오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고 「법의 지배」를 이제는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의식의 차원에서는 지나친 자기과시나 자기비하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진국에 가서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고 선진국에 가서는 사대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시민은 세계시민으로서는 자격미달이지요.
이변호사 : 공동체를 중시하는 시민윤리의 확립도 긴요하다고 봅니다. 선진시민을 가늠하는 첫 번째 기준이 공중도덕의 준수여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나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는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밖에 기회의 평등보다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풍토, 합리성보다는 정서나 감정을 중시하는 풍토, 전문가 보다는 명망있는 일반가를 선호하는 경향, 지연, 혈연, 학연 등에 기반한 집단 및 조직이기주의,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국수주의 등도 세계화의 장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덕목은 이 시대의 낙오자가 아니라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신감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란 표현처럼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토착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안팎을 균형있게 살피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손의원 : WTO 출범을 앞두고 되새겨 볼 것중의 하나가 우리는 은연중 보호받고 의존하려는 멘탈리티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농산물 시장개방의 대응과정에서 나타나듯 미국 등에 대해 정정당당한 협상보다는 베풀어달라는 식의 응석형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세계화는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 호혜의 시대이지 부양과 피부양의 시대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시대란 것을 받아들여야지요.
그런면에서 언론과 교육 등은 우리 국민들에게 상호주의를 학습시키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합리성과 창의성, 자율성과 책임성을 지닌 새로운 인간상의 제시도 필요하지요.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와 남이 더불어 함께하는 커뮤니티의식의 함양입니다. 기존의 국가체계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탈근대의 조류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가장 가까운 공동체에서부터 시민의식과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 지금부터라도 세계화 지역화 지방화 정보화 등의 흐름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국가체제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참으로 진지한 연구와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는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너무 늦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