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대학교육④ 개혁토론(교수들의 자기진단-처방), 조선일보 7면, 1993.11.25.(목)

(이기준 교수(서울대), 안병영 교수(연세대), 김광웅 교수(서울대), 송상현 교수(서울대)
대학교수는 관료 – 계급조직의 일원인가
안병영 : 우리 대학에서 아카데미즘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관료주의가 미만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있는 「자리」가 이 현상을 부추깁니다. 교수들이 보직을 오래 맡다보니 자신도 모른 사이에 이쪽으로 전업하는 식이 되고 마는 거죠. 또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보직은 해야 체면이 서는 사회풍토가 그렇게 만들기도 합니다. 동료 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이도 들고 했으니 학장이나 처장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인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다 보면 자칫 「전교수의 보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김광웅 : 밀로반 질라스가 『지식인이 관료화되어 간다』고 말했던 바와 같이 대학도 관료화되어 가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물적 생산수단만 통제하는게 아니라 지적 생산수단까지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조직이 국가의 지배하에 정부의 행정을 닮아가다보니까 대학에 홍보기능이 생기고 기획실도 생긴 겁니다.
이기준 : 지금의 현실은 60년대 초에 대학생수가 1만5천명 이하인 대학을 운영하던 시기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지금은 1만5천명 이상의 학생을 운영하는 대학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구멍가게식 운영」과 「대기업식 운영」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죠. 규모가 커진 대학을 운영하려니까 관료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대학의 운영은 구멍가게식도, 대기업식도 아닌 다른 「대학운영」방식이어야 합니다. 총장은 꼭 대학교수가 돼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잘못된 것입니다. 운영능력이 탁월한 인물이 총장이 되는 것도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광웅 : 대학이 커질수록 관료화되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계획하고 집행하려면 관료조직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대학조직은 사회의 다른 조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학이라는 말의 어원인 중세의 콜레지아(Collegia)란 말은 평면조직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평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중 하나가 심부름꾼인 총장이나 학장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은 군사통치하에서 평면조직이 사다리꼴조직이나 피라미드식 조직으로 바뀌어 버리고만 것입니다.
송상현 : 정부의 획일적 통제가 대학을 나쁜 의미의 관료조직으로 만들었다는데 동의합니다. 5․16후에 대학에서 시위가 많이 일어나자 박정희 전대통령이 대학의 정원을 직접 조정하고 나서면서 대학에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국립대학의 교수가 쓰는 연구실의 평수는 계급에 따라 획일적으로 법으로 정해져 있고 난방하는 날짜도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12월에 날씨가 풀려도 기름을 다 때야 다음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난방을 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획일적 통제를 제거하고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해야 이런 낭비와 불합리한 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교문화권에서의 연공서열제나 감투선호사상이 교수를 정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의 4계급으로 나눴고 그것이 학문의 관료제화를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김광웅 : 학장회의를 하다보면 이미 전문위원회에서 결정난 사안을 사후에 추인해주는 것 밖에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원안대로 통과되기 때문에 학장회의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기준 : 자율성이 확보되려면 먼저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보의 공유가 이뤄지지 않으니까 토론문화가 정착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송상현 : 학문간에 할거주의가 팽배하다보니 훌륭한 학문적 성과도 개인의 노력이나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있는 학과를 통합해 강의를 공동으로 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기준 : 일본은 아예 교무처가 없습니다. 학교조직이 매우 단순화되어 있지요. 또 명치유신이래로 대학에 최소한의 경쟁원리를 도입해 놓았습니다. 최소한 2대1로 경쟁을 시켜 이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나중에 학장도 하고 총장도 하는 그런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송상현 : 서울대에서 지난 75년 흩어져 있던 단과대학들을 관악산으로 옮길 때 한 곳에 몰아넣으면 행정요원이 60%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했지만 옮긴 뒤에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현재 1천3백명의 교수에 행정요원이 1천6백명입니다.
안병영 : 모든 대학이 비슷한 정황인 듯 합니다. 한번 늘어난 직원수는 줄이기 어렵습니다. 인적자원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副자 붙은 자리가 많아지고 새로운 조직만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효율적인 경영도 어려워지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거지요. 조직이 너무 크다보니 잘못된 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이기준 :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총장이 목표를 세우고 운영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총장에게 어떤 철학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인기에 의해서만 뽑히는 현재의 총장직선제에도 문제가 있는거죠.
송상현 : 방향감각이 없다보니 고급두뇌인 교수를 대학행정에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의 이념설정이나 정책에 교수들을 활용하는 체제가 잘 가동된다면 계획만 세우고 몇 년씩 지지부진한 일이 개선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배운 건 많고 계획도 잘 세우는데 실제로 실천하는 교수들이 별로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안병영 : 대학본부는 대학전체의 발전기획에 전념하고 웬만한 일은 분권화하는 것이 필요할 줄 압니다. 그러나 대학이 과나 대학별로 폐쇄주의나 할거주의에 빠지지 않고 서로 협조해서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역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광웅 : 대학조직은 더 이상 학문적 업적과 평등구조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마다 무슨무슨 조직이 생기는 것도 문제죠. 한 예로 서울대 부총장이 의장인 위원회만 40여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송상현 : 참여의 취지가 없지 않겠지만, 감투의 필요 때문에 위원회 같은 것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결국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편한 사람들끼리 만나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기준 : 대학이 학생위주로 움직이는 것도 문제죠. 한 예로 학생들은 전공필수-교양필수 과목이라는 틀에 얽매여 선택할 수 있는 강좌가 제한돼 있습니다. 결국 획일적인 관료화가 학생들을 대학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김광웅 : 교육부 장관은 아직도 1백51명의 대학교 총-학장을 모아놓고 군대식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군사정권의 관료적 양식과 다를 바가 없더군요. 이제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간섭을 줄여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안병영 :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자율성을 찾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학의 내적 개혁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관의 시녀 노릇하기에 바빠 제 일을 챙기기가 어려우니까요.
김광웅 : 결국 교육부가 대학을 통제하고 대학이 교수들을 통제하는 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송상현 : 이제 대학행정도 분권화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한번 연구계획서를 내게 되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여러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교수의 서명으로 처리되는 행정도 필요합니다.
이기준 : 연구비 배정 등이 너무 중앙집권화 되어 있습니다. 교육비용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분권화가 되려면 먼저 교육비용에 대한 표준화가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화학과의 교육에는 얼마가 들고 경제학과의 교육에는 얼마가 들고 하는 식의 표준이 정해지면 중앙집권화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상현 : 우스운 얘기지만 예산이 단과대학 단위에서 학과를 중심으로 배정되다 보니까 서울대 법대가 공법학과와 사법학과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다른 대학교에서 이것이 좋은 제도인가보다 하고 따라오고 있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획일적일 수 있습니까.
이기준 : 미국의 버클리대학이 교수협의회를 만들 때는 각 대학의 학사운영행태를 감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를 서울대 공대에서 따와서 이전부터 있었던 교수회의와 교수협의회가 중복되고 말았습니다.
송상현 : 미국의 하버드 법대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 1시에 전체 교수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오후 5-9시 사이에 끝나는데 이때 학교의 행정이나 정책, 학문적 토론 등 별의별 얘기가 다나옵니다. 교수간에 진정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죠. 우리도 이제는 이와 비슷한 제도를 만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대학이 하루속히 「관료적 틀」에서 벗어나 아카데미즘의 이상대로 자유와 창조가 활력을 되찾는 조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