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하버드대학의 의미,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2. 19.
하버드 法大에 교수로 임명을 받아 1월 하순부터 봄학기 강의 하기 위하여 부임하면서 과연 하버드대학이 한국사람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얼마전부터 본인이나 자녀를 하버드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힘써 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심심치 않게 받으면서 들은 말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하버드에 들어가기를 고집하는가를 물었더니 그 인사의 대답이 의외였다.
선거철에 여기저기 붙은 입후보자 벽보를 들여다보고 있던 한 주민이 「별로 아는 사람도, 마땅한 사람도 없는데 마침 하버드에 다녀왔다는 경력을 내세운 자가 있으니 이사람을 찍어주어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다음에 국회의원선거에라도 출마해서 당선되려면 사람들이 모두 알아주는 하버드를 꼭 다녀와야 되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과연 이 유명한 대학에 잠깐이라도 다녀오거나 어렴풋한 관계라도 맺은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굉장하게 내세울만한 일이고 사회에서도 특별히 우대받을 만한 일인가.
3백50여년의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대학으로서 외국유학생을 받아들인 것은 수십년에 불과하다. 하버드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선진학문을 가르쳐주었고 각계의 지도적 중견인사들에게 정신적 양식을 다시 충전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하버드에만 매달리는 이유가 한국식 일류의식과 차별의식을 우리와 전연 사회적 구조와 기준이 다른 미국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데서 오는 결과일까 두렵다.
하버드를 서울대학에 비교하는 단세포적인 일류의식이나, 타고다니는 자동차의 크기로 사람의 지위를 속단하는 일이나 살고있는 아파트의 크기에 따라서 차등을 두어 대접하는 비뚤어진 의식구조가 외국의 학교를 지원하는 데까지 확장 적용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전통의 하우스제도,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2. 26.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우선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학문과 지식을 전수해 주어야할 최고학부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대량교육제도가 도입된 이래 우리는 대형강의실에 수많은 학생을 수용한 채 교수의 일방적 강의로 이루어지는 대학교육에 익수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량적 교육방법은 지식의 효과적인 전달에도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인격의 함양이라고 하는 대학의 또다른 목적을 거의 달성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영국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수백년전부터 소위 칼리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경우 칼리지는 학문분야별 단과대학이 아니라 수백년간 독립된 재정과 조직을 가지고 교직원과 학생이 한데 어울려 사는 생활공동체(學寮)를 의미한다. 학료에서 침식을 같이하고 생활하는 동안 사제간과 선후배간에 끊임없이 지성과 인격이 교류되는 향연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칼리지제도는 미국식 대량교육제도하에서는 엄두를 내기조차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버드대학이 일찍부터 이를 도입했는데 그것이 이른바 그들의 하우스제도이다.
하버드 하우스는 분야가 다른 교수와 조교와 학생들이 동일한 하우스에 속하여 침식을 같이하면서 인생과 학문을 논하고 젊은 인재들이 무한한 장래를 마음껏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수련장인 것이다. 하버드 대학생들은 대학 4년간 지성적인 분위기에 푹 젖어서 지도자적 자질을 기르고 교수들과 전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최고의 윤리기준과 행위규범을 배워서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하우스제도가 아니면 학과공부도 따라가기 어려운 속에서 언제 어떻게 훌륭한 선생님들의 개별적 체취와 풍모, 지도에 접할 기회가 있겠는가.
각 하우스는 그 생성연원과 전통, 분위기가 서로 조금씩 달라서 자못 경쟁적 관계를 갖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하는 길에 찰스강변을 따라 각기 그 위용을 뽐내면서 즐비하게 서있는 하우스들의 첨탑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각 하우스 속에서 오늘은 튜터와 학생간에 어떤 토론이 벌어질 것인지를 상상하면서.
「20년總長」의 퇴임,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3. 5.
하버드법대의 데릭․복 교수가 제25대 하버드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한 것은 1971년이었다. 그는 노동법의 권위자로서 많은 노사분규를 중재하여 훌륭하게 해결해낸 조정의 명수이기도 했다. 그 복 총장이 불혹의 나이에 취임하여 꼭 20년간 하버드대학을 이끌어온 끝에 금년 6월말로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후임총장을 물색하는 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전세계에 퍼져있는 하버드동문들에게 총장후보를 추천하라는 공한을 발송하기도 했고 여러 후보들을 비밀리에 접촉하여 면담도 여러차례 해오고 있다.
복 총장은 재임 20년간 윤리도덕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대학교육이 너무 전문적 직업인을 양성하는데 치중해온 것을 반성하고 오늘의 국가사회에서 그들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해 교육의 윤리성을 주장하였다. 학부교육과정에 5대 핵심필수과정을 두어 학부학생들이 도덕기준과 역사의식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였고 교수와 학생들의 생활공동체인 하우스제도를 강화하여 지성과 인품의 교류를 도모하였으며 학생들이 공공봉사를 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 제도화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윤리도덕을 우선적 교육방침으로 내세운 총장답게 자신의 사생활을 깨끗이 하고 하버드대학의 자산운용도 흑백차별정책으로 국제적 지탄을 받는 남아공계 회사나 월남전과 관련하여 비난받는 군수산업체에는 투자하지 않는 등 그 나름대로 언행일치에 노력하였다. 그는 윤리도덕이 오늘날에도 대학에서 가르쳐야 되고 또 충분히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중요부분임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교육자였다.
교과과정의 改革,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3. 12.
그는 거액의 연구비를 교수들에게 지급하여 우선 학부과정 커리큘럼의 개혁을 위한 연구에 착수하도록 했다. 여러해가 걸린 이 연구 계획을 교수회의에 회부하여 1979년부터 실시하기로 의결한 것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핵심커리큘럼(Core Curriculum)」이다. 이에 의하면 대학4년을 졸업하는 학생에게 학부교육을 통하여 공통으로 갖추어 주어야 할 필수조건은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이다.
첫째는 중요한 문학과 예술상의 업적을 학생들에게 익히게 한다음 인간이 세상에서 경험한 것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하는지에 관하여 비평적인 이해력을 계발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역사분야에서 현재의 세계주요상황을 역사적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과거 인류역사에서의 특정사항의 복잡성을 이해하도록 유도할 것이며, 셋째, 사회분석과 도덕적 합리성의 면에서는 관련된 중심적 개념과 이상을 학생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기본적 관점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생각할 능력을 길러야 하고, 넷째, 과학의 분야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연과학 생물과학 그리고 여러 가지 과학의 기본원칙을 가르치고 과학을 인류와 세계를 보는 한가지 방법으로 이해시켜야 하며, 다섯째, 외국문화와 관련해서는 학생들의 문화적 경험의 범위를 넓히고 문화적 가정과 전통에 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아울러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작문․외국어․수학 등을 필수로 한다. 하버드의 이 핵심커리큘럼은 2차대전 이후에 미국대학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교육개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法大生들의 소송,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3. 19.
하버드 법대생들이 대학교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대가 교수를 임용하는데 흑백차별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건은 오랜 심의 끝에 최근 이곳 지방법원에서 각하되었다.
하버드대학은 금년에 학부과정 1천6백여명을 뽑으면서도 흑인 남학생은 한명뿐이라는 둥, 전문대학원에서나 어느정도 흑백비율을 맞추어 체면치레를 하려한다는 둥 심심찮게 비난을 들어왔다.
수년전에는 다fms 대학에서 이곳에 초빙되어 가르치던 흑인여자 교수 한사람이 정식채용을 거부당해 소란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대학당국의 결정에 항의하여 단식하거나 월급을 안받는 교수도 있었고 항의 표시로 안식년을 얻어 떠나는 교수도 생겨났다.
마침내 법대학생중 민권연합이라고 하는 임의단체가 제소하면서 주장하기를 하버드법대 교수임용은 통계를 장기간에 걸쳐 면밀히 고찰할 때 인구구성비에 어긋나고 학생자신들은 하버드의 교수들간에 체결된 임용계약의 수익자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여성이나 흑인 소수민족 출신의 교수를 임용할 경우 학생들이 접할 수 있었을 다양한 견해와 경험 그리고 어떤 역할모형을 전면 제시할 수 없으므로 학생들은 구제받을만한 직접적이고 구체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법과대학도 고문변호사를 통해 법대민권연합은 당사자능력이 없는 단체이고, 교수임명관례가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을 학생측이 입증하는데 실패하였으며 학생들이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는 너무나 간접적이어서 당사자적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미들섹스법원의 브래디판사는 대부분의 관점에서 학교측의 주장에 동조하는 견해를 표명하면서 학생들의 소송을 각하하였다.
법대학장 로버트․클라크교수는 학생들이 제기한 소송이 각하되어서 다행이지만 차별없는 교수임용은 법대전체의 중요과제로서 계속 관심을 가질 것이며 앞으로는 소송이외의 방법에 의한 토론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법정소란없이 학생들은 패소판결에 따랐고 판사도 원고인 학생들의 우수한 변론실력을 판결문에서 특별히 칭찬하였으며, 학장은 판사가 학생들의 우수한 자질을 지적해준데 대하여 감사한다고 했다. 법률절차를 통하여 한껏 다루어보고 모두들 앙금없이 웃는 낯으로 승복한 한판승부였다.
교육현장 연례점검,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3. 26.
하버드대학에서는 단과대학별로 1년에 한번씩 졸업생들로 구성된 이른바 감독위원회(OVERSEERS COMMITTEE)의 방문을 받는 행사가 있다. 올해 법대의 경우에는 각계각층의 동창생 중 인종․성별․지역분포․연령․분야 등을 고려하여 총장이 직접 위촉한 27명의 방문을 받았다.
감독위원회는 주말에 모교를 방문하여 7일 동안 학교의 현황에 관한 보고를 받고 교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강의실을 참관하고 도서관 등 시설물을 살펴보고 학생들과 별도의 대화시간을 갖고 교수들과 식사를 같이하는 등 단기간이나마 철저하게 살펴본 다음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총장에게 직접 제출하고 해산한다. 내년에는 다른 동창생들이 위촉되어 같은 일을 하게 된다.
나에게도 최초로 한국에서 초청되어 가르치는 교수라는데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한국법을 미국대학에서 가르쳐야 할 필요성과 전망, 학생들의 반등 등에 관하여 질문이 여러차례 나왔다. 모두들 진지하면서도 날카롭게 묻고 기록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총장에게 직접 제출한 보고서가 나중에 공개되어야 알겠지만 가장 흥미롭게 토론되었던 문제가 두가지였다. 우선 하버드와 같은 지도적인 법대는 좀더 공공이익과 관련되는 법률서비스를 많이 하도록 제도를 확대하고 더많은 학생이 지역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된다는 점이 누차 지적되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 법률구조는 작은 예에 불과하고 사회정의를 위한 각종 법률활동을 더많이 벌여야 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현재의 학장이 취임한지 2년 미만에 일본 노무라증권이 무조건으로 기부한 3백만 달러를 비롯하여 4천7백여만 달러를 모금한 노력을 치하하면서도 학장이 자기 개인의 사생활도 없이 거의 모든 시간을 기금 모금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법과대학의 관리자로서 온당한 업무집행인지, 이로 인하여 대학고유의 다른 학문활동 등 기능에 대한 희생은 없는지가 논의되었다.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우리와 너무나 다른 점이 많아서 나 나름대로 이를 소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신입생 선발심사,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4. 2.
하버드대학 금년도 신입생 선발작업이 모두 끝났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치열한 입시경쟁이나 엄청난 과외부담도 없고 입시부정이나 제도자체에 대한 비판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버드 학부입학을 위해서도 고등학교에서 우등생반에 들어가야 하고 그들이 쳐야하는 학업적성고사(SAT)에서 1천3백50점은 맞아야 한다는 둥, 1천5백점을 받으면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둥 말이 많다.
어디 그뿐인가. 학생의 정서개발이나 과외활동을 참작한다고 하니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워야겠는데 시간당 수십달러씩 내야 되는 과외교습비가 너무 비싸다는 불평도 들린다. 이제는 경쟁이 심해지는 만큼 운동경기도 한가지 이상 잘 해야 함으로 이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고 지도자적 자질도 고려한다고 하니 여러 가지 단체활동이나 봉사 내지 유사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밤낮 자동차 태워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부담만도 부모를 쉬지 못하게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SAT시험을 쳐서 우수한 성적을 얻으면 조기입학이 되는 학생도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 보면 전국의 최우수 학생이 빠짐없이 하버드에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입학한 학생들이 모두다 특출하게 잘 따라간다고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학력고사 점수별로 대학이나 학과의 순위가 정해지는 일은 결코 없다. 대학원 입학 때에도 고려하는 관점은 비슷하겠으나 세계각지에서 더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만큼 기본서류를 검토하고 추천서나 연구계획서 등을 읽어보아야 하는 학교측의 업무부담은 연초부터 부활절 전후까지 대단하다.
학교행정의 면에서는 우리처럼 일시에 입학시험 한번 치르고 선발이 끝나면 간단하겠는데, 하버드대학은 이같은 서류심사를 위해 방대한 행정조직과 직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심사위원회에 참여해야 하는 교수도 시간을 많이 뺏긴다. 사전에 형식요건의 불비로 문전에서 각하되고 심사위에 올라오는 건수만도 정원에 비해서 20대 1 이상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금년도 하버드법대 1학년에 한국계 학생만 22명 (전체의 4%)이 들어오는 등 한국학생의 지원과 입학이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반가우나 이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 이같은 고급 인적 자원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는 대책은 어디에도 수립돼 있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루딘스타인 신임총장,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4. 9.
만 20년간 하버드를 잘 이끌어온 데릭․복 총장이 60세의 한창 일할 나이에 갑자기 사임의사를 발표했을 때 깜짝 놀란 사람들은 10개월간의 탐색끝에 멜론재단의 부총재인 56세의 닐․루딘스타인이 후임 제26대 총장으로 선임되자 또한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650년의 대학정관규정에 따라 구성된 9인의 총장선임위원회가 전현직 교수직원․동창생․학생 등 25만8천명에게 편지를 내고 3백45회의 면접을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7백63명의 후보자를 추천받은 후 마지막 8명 중에서 그를 선정했지만, 그는 여러가지로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프린스턴대학을 수석졸업한 후 로드스칼라로서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역시 수석졸업을 했다. 1964년 하버드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인 프린스턴에 영문학 교수겸 학생처장으로 옮겨갈 때까지 하버드대에서 4년간 가르친 인연이 있지만 전임자에 이어 하버드칼리지를 졸업하지 않은 두 번째 총장이 되었다.
둘째, 그는 매우 보잘 것 없고 가난한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 인물로서 역대총장들의 배경과는 너무 거리가 있다.
아직도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하고 있는 76세의 이탈리아 이민인 어머니와 교도관이었던 러시아계 유태인 이민인 아버지 사이에서 3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그의 집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탈리아 문화적 배경과 천주교의 영향을 담뿍 받고 성장한 일방 유태인인 아버지와 부인으로부터 그 전통을 이어받았으므로 대단히 특이하고 다양한 문화적 인종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르네상스문학의 전문가이다.
셋째, 오랜만에 문학도가 총장이 되었지만 그는 프린스턴에서 학처장직을 역임한 후 10년간 부총장을 한 경험이 있으므로 학교행정에 충분한 식견과 경륜이 있을 것이고 인문과학 푸대접현상도 시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1987년에는 프린스턴의 총장이 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이미 20년이나 봉직한 자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여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일개재단의 부총재로 전직했던 인물인 만큼 그의 철학과 수완이 당장 25억달러 모금 달성과 소수민족계 교수 증원 등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 궁금하기만 하다.
기부금 관리 원칙,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4. 16.
1972년 이래 하버드에는 두개의 특이한 위원회가 있다. 교수와 학생과 동창생으로 구성된 회사주주의 책임에 관한 위원회인데 하나는 자문기능을 하고 다른 하나는 감독기능을 한다.
금년부터 모금목표액 25억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캠페인을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하버드는 거액의 기금과 자산을 기부받고 이를 운영한다. 기금관리 방법의 한가지는 각종 수익성 높은 주식에 투자하여 기금을 증식시키는 것인데 원체 많은 기업에 거액의 주식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투자원칙과 주주로서의 의결권행사원칙 등을 정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위원회는 이같은 원칙을 정하고 매년 이를 재검토하여 총장에게 건의하는가하면 주주총회에 앞서 위임장 작성권유가 있거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논의될 때마다 투자주주인 하버드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권고한다. 대체로 사회공익적 성격을 띤 여러 가지 쟁점별로 하버드의 행동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남아연방에 투자하는 업체, 핵무기를 제조하는 군수산업체, 전쟁장난감 제조업체, 공해업체, 종교를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는 업체, 북아일랜드에 공장을 가동하는 업체, 핵발전소 등 핵에너지제조업체, 불평등고용업체, 멕시코일부지역에서 조립공장을 운영하면서 착취하는 공업체, 유아분유제조업체, 담배회사, 다량의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하는 업체, 아랍보이콧업체, 소수빈민지역을 돕지 않는 업체 등에는 투자하지 않거나 회사로부터 자세한 관련정보를 요구하거나,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불합리, 부도덕한 점을 시정하는 주주제안을 상정하여 통과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하는 남아연방에 직접 투자하거나 판매하는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방침이고, 세계보건기구가 제정한 모유대용품판매에 관한 국제규범에 위반하여 분유 등을 제조하거나 지나친 광고를 하는 업체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규범준수를 강력히 권고한다. 최근에는 전쟁무기를 흉내낸 장난감 제조업체에 비폭력적이고 창의적 장난감을 제조판매할 계획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바 있고, 공해업체의 경우에는 특정한 유해물질의 사용중지, 또는 공해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 기타 이사회내에 환경문제담당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한 바도 있다.
또한 저임금을 이용하여 멕시코 마킬라도라 지역에 조립공장을 가동하는 1천8백여개의 미국기업에는 유해한 화학물질이나 산업쓰레기 폐기방식 공해배상실태 임금실태 근로자주거 환경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정부, 기업, 민간단체 등이 적립 또는 관리하는 각종 기금이 많이 있는데 그 운영의 체계성, 효율성 및 윤리성을 위하여 하버드의 방식은 큰 교훈이 될 만하다.
총장의 연례보고서,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4. 23.
1년의 학사력이 거의 끝날 이때쯤이 되면 하버드대학 총장은 꼭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며 각 신문들도 이를 게재한다. 이는 지난 1년을 회고해보고 문제점을 지적하여 자기 분야내에서만 파묻혀 일하는 대학구성원에게 한번쯤 크게 대학이 나갈 방향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비중있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대학의 학문적 사명이 세가지 측면에서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첫째, 대학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압력, 둘째, 대학이 지나치게 많은 프로그램이나 바깥일에 관여하려는 욕심, 셋째, 대학의 활동을 상업화하려는 유혹 때문에 대학의 순수성이 타협되고 사명이 망각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정치적 압력은 대학 밖에서 밀어닥쳐서 대학에 정치적 목적에 따른 방침결정이나 계획수립을 강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학내에서도 각 이익집단들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실력행사를 한다.
지금도 법대학장실 복도에는 소수민족과 여성을 좀더 많이 법대교수로 채용하라는 요구와 함께 법대학생들이 농성하고 있다. 이같은 행위는 결국 대학의 독립성과 대학구성원의 표현의 자유를 희생시키게 된다.
둘째, 대학이 그 기본적 임무를 저버리고 너무나 바깥일에만 쫓아다니면 교육과 연구의 질이 저하된다. 물론 대학교육에 대한 대중의 끊임없는 요구나 대학교수의 전문적이고 불편부당한 의견제시의 필요, 또 대학의 기본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공공봉사의무 등은 계속 증가될지라도 정부 기타 힘있는 집단에 대한 자문역할 등은 다소 통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간 소련 및 동유럽 각국에 하버드의 많은 교수가 뻔질나게 왕래하면서 조언해준 경우는 본말전도이고 지나친 감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대학의 상업화는 재정압박을 면하기 위하여 새로운 수입원을 찾으려는 활동과 관련하여 진전된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행위는 괜찮고 어떤 것은 안되는지에 관하여 아주 세밀한 검토와 엄격한 기준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으로 인하여 제품화되면서 기술료나 판매수입을 기대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고급훈련과정을 운영하여 수입을 올릴 수도 있으나 이같은 이윤동기를 대학의 임무와 명예의 손상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단순한 전술전략상의 수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앞으로 대학의 리더십이 여간 강력하지 않아서는 대학이 주식회사처럼 상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학의 기본가치와 사명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고 말 것이다.
어느 추도식,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5. 3.
케임브리지는 하버드와 MIT 등을 포용하는 평화로운 교육도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지성의 본산으로 부를 수 있을 만큼 국내외 석학들이 자주 교류하고 외국유학생들의 오고가는 발길도 바쁜 대학도시이다. 이곳에서 잔인한 4월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하버드법대 교수의 부인이 자택앞길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고인도 이 근처의 뉴잉글랜드 법대교수로서 일찍부터 남편에 못지않은 명성을 누린 사람이었다. 남편과 두자녀 등 네식구가 저녁식사후 부인이 길건너 2백m 전방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간단한 용품을 사려고 집을 나선 것이 저녁 8시 30분경이었는데 그 직후 길에서 참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 사고장소 앞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성가합창연습을 하는바람에 고인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고 사람통행이 많은 브래틀가 부근이었는데도 신속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출혈과다로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인재를 잃었다는 점도 있고 사고장소가 케임브리지시내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고 집값이 비싸서 법대교수 몇사람 외에 록펠러 등 부유하거나 지도층 인물들이 모여사는 스파크스와 브루스터가의 교차점이라는 점에서 하버드법대와 이곳 법조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고 다음날 상오 법대학장실에 학교관계자를 위하여 설치된 조상소에 조문을 가보니 교직원들이 모두 신속하게 모여들어 있었다.
따로 고인의 자택을 방문하여 위로하는 친지도 더러 없지는 않았으나 장례절차일체는 완전히 가족끼리만 치르고 그대신 얼마후 따로 택일하여 하버드야드에 있는 교회에서 추도식을 거행하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이같은 방식은 비슷한 시기에 작고한 다른 법대교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추도식도 목사가 모든 의식을 다 집전하는 것이 아니고 고인의 생전친구, 동료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나와서 고인의 생애를 소박하게 회고하는 조촐한 모임이다.
참석자는 많았으나 요란한 조화도 조위금 접수도 없고, 고인의 인간적 풍모와 유머러스한 일화를 회고할 뿐 과시와 허식과 필요이상으로 위대한 사람 만드는 허사가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날마다 소수민족계와 여성교수의 채용을 요구하면서 학장실을 봉쇄하는 등 데모를 하던 일부 법대학생들도 이날만은 시위를 중지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연구비 지출내역,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5. 10.
미국의 유명한 종합대학들은 대개 이공계가 강하고 그 이유는 튼튼한 기초적 지원을 토대로 교수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선진적 연구업적과 발명 발견 개량을 계속 내놓기 때문이다. 기초분야의 연구도 대단할 뿐만 아니라 산학협동체제가 잘 되어 있어서 새로운 연구결과가 금방 산업화되기도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지금 우리가 도입하려는 소련의 과학기술은 대부분 그들이 과거에 미국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훔쳐간 것이므로 우리손으로 막상 제품을 생산판매했을 때 미국으로부터 자기네의 지적소유권 침해라는 항의를 받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도 있다. 아무튼 미국대학들은 연방정부 등 외부의 연구비를 받아서 과학기술의 연구 발전에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버드의 경우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가 현재 1년간 운영예산의 17%를 차지하는데 이는 1970년의 33%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아직도 스탠퍼드대학은 30%, 그리고 MIT대학은 26%가 연방정부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최근 미연방의회 소속 일반회계청(General Accounting Office)이 일류대학들의 연방연구비 사용내역을 회계감사한 결과 부당한 지출이 드러나서 말썽이다. 예컨대 스탠퍼드대학은 연방정부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는 것 중 36만9천달러를 간접비로 지출했다 해서 비슷하게 간접비의 비중이 높은 MIT와 하버드의과대학 등도 감사하기로 하였다.
직접비용, 즉 연구하는 교수의 월급, 실험실 장비비용 등은 분명하고 별문제가 없으나 건물유지 보수비용, 실험실 냉난방, 행정비용 등 간접비용은 이것이 과연 해당연구용역과 관련하여 지출된 것인지조차 애매하여 항상 문제가 된다. 스탠퍼드는 학교요트의 감가상각비, 총장관사 장식용 꽃값 등이 지적되었는가 하면 하버드의과대학은 퇴임학장을 위한 리셉션비용, 보스턴 공립학교에 대한 기부금 등이 지적됐다. 대학당국은 모두 회계처리상의 잘못임을 내세우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목적에 합치하는 정당한 지출임을 주장하면서도 문제된 지출금을 모두 연방정부에 판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를 위촉해 자체감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기존의 회계관행이나 연구비사용원칙에 관하여도 세심하게 재검토하여 수정을 약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의 연구비를 받은 교수가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되었을 때 그 특허권 기타 지적소유권의 소유자는 누구이며 기술사용료 수입은 어떻게 분배되어 하는지에 관하여서도 명확한 기준과 처리방법을 정하고 있다.
이라크가는 學生들,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5. 17.
1960년대말 월남전 반대데모의 열기가 가득하던 하버드야드와 케임브리지 커먼 공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던 캠퍼스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학생들의 의식 구조가 변해서일까 아니면 전쟁이 43일간의 단기로 끝났기 때문일까.
하버드대학의 법과대학생과 보건대학원생들로 구성된 학생팀이 이라크를 방문하기 위하여 떠났다. 연합군이 폭격한 50여군데의 전쟁터를 돌아보고 의료지원을 함과 동시에 전쟁이 이라크 인구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법대에서는 인권연구프로그램에 속해있는 학생들이 주로 이 여행을 기획했는데 이라크 민간인들이 당면한 전쟁후의 어려움과 쿠르드 난민의 입장을 조사하여 국제사회에 알리고 미국의회에 보고하겠다는 것이다. 법대생들은 현지에서 주로 증인들과 면담을 하고 50개 폭격지점에서의 민간인 살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것이고 보건대학원생들은 의료지원 외에 아동들의 영양상태, 병원이나 지역보건소들의 의료서비스실태에 관한 조사 및 평가를 할 계획이다. 이들의 이와같은 이라크 현지조사계획은 연합군의 폭격에 의한 이라크 민간인 사상에 관한 정보가 일체 기사화되지 않은 것에 실망한 법대생 몇 명이 추진한 것으로서 맥아더재단을 비롯하여 여러 미국재단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듬뿍 받았고 일반인의 기부금으로 2톤이상의 의료품을 구입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법학이나 의학 등 실용학문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회포착, 학교에서 배운대로 기본적, 인권문제에 대한 학문적 추구와 현실감각,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재정지원을 마다하지 아니한 재단들과 관심있는 시민들의 기부 등이 어우러져 무엇이든지 창의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실험해 볼 수 있는 자유미국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美대학돈줄 한국인,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5. 24.
금년도 미국 각 대학의 입학 절차는 모두 끝났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이비리그 등 일류대학일수록 적성시험성적, 지도자다운 자질, 예체능특기 등을 종합검토하여 좋은 학생을 확보한다. 하버드대학의 경우에도 금년에 전국고등학교에서 지원한 최우수 학생들 1만2천3백여명중 약2천명에게 입학허가서가 발송되었다.
이들 2천명의 행운아중에서 가정형편 장학금 사정 기타 이유로 약4백명 가량이 타교로 가고 결국 이 학교 정원에 근접하는 1천6백명 정도가 실제로 학부과정에 입학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러한 통계적 추세는 아이비리그대학에 일반적으로 공통된다. 그런데 일반적 경향을 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대학취학연령해당자가 감소하는 미국의 인구패턴 때문에 대학에 따라서는 지원자가 정원미달인 경우도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일류종합대학교들은 비교적 영향이 적으나 소규모의 전통있는 유명사립대학들이 심한 타격을 받는다.
또한 지원자들은 동시에 여러 대학에 지원하여 여러 곳에서 입학허가를 받은 후 한 대학을 선택하게 되는 만큼 좋은 대학부터 우수한 학생들로 정원이 확보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미국 각 대학의 입학사무담장자들은 지원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뻔질나게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각지를 자주 방문한다. 금년에도 충분한 지원자수를 확보하지 못한 사무직원이 대학에서 쫓겨난 경우가 많다. 이같은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대학마다 비상이 걸렸다고 하겠다.
반면 한국인들은 미국의 일류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키기 위하여 고등학교부터 미국의 일류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필립스아카데미와 같은 고등학교에는 수업료가 굉장히 비쌈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숫자가 가장 많아서 보스톤 글로브신문에 특집으로 나기도 하며 음악학도가 줄리어드로 모여들어 그곳도 한국학생이 가장 많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유례없는 외국유학열에다가 대학을 실패한 후 미국으로 탈출하는 부유층 자제까지 합쳐보면 우리나라는 곤경을 겪는 미국대학들의 큰 고객일 뿐만 아니라 교육서비스를 하나의 국제무역상품으로 보는 미국인들에게는 참으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제들의 미국유학문호가 그만큼 넓어졌다고 무작정 좋아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정부의 무정견한 유학정책, 당사자들의 무지하고 준비없는 유학, 현지에서의 과도한 소비행태나 엄청난 시행착오 등은 언제까지나 방관하여야 할까?
제제받는 大學의 담합,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5. 31.
우리나라도 경제성장이 고도화되자 제5공화국에 접어들면서 독점의 폐단을 제거하고 경쟁을 통한 시장기능을 확보하기 위하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0년 남짓 시행하여왔다. 초창기에는 법집행을 잘 몰라서인지 시장경제체제 내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는 모두 단속한다는 명분하에 다방에서 파는 각종 찻값이 협정가격으로 묶여 있어서 경쟁을 회피하고 있는지 조사하러 다니는 것도 보았다.
불과 몇해도 안지나서 공무원들이 성급하게 모방하여 만든 이 법이 우리 실정에 안맞는다 하여 자꾸 고치다 보니 누더기법이 되어 체제상 맞지도 않고 법적 안정성도 확보하지 못하더니 마침내 전면개정을 한 것이 10살밖에 안된 독점금지법의 신세였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강력한 법률이 보험산업이나 또는 변호사 등 전문직종에도 적용이 되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각 해당산업 분야별로 우스운 힘겨루기를 한 때도 있었다.
이같은 우리의 독점금지법 제정과 집행에 관한 역사적 상황에서 이번에는 미국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미국독점금지법의 적용을 받을 뻔 했다면 한국에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이비리그의 8개 명문대학은 매년 회합을 갖고 입학금이나 수업료 액수 등을 담합하기 위하여 교수 및 학생들에 관한 재무자료 등을 교환하였고 특히 학생들이 여러개 대학에 동시에 지원하여 때로는 수개학교에서 입학허가서를 받는 경우가 보통이므로 그와 같은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 등 재정지원조건을 동일하게 만들어서 장학금조건이 더 좋은 대학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일이 없도록 토의하는 관행이 미국의 독점금지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미국법무장관이 이와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자 8개대학 관계자들은 우선 금년에는 그와 같은 회합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자기네들은 수업료나 장학금조건 등을 담합하거나 상거래에서의 가격지정행위에 유사한 위법행위를 한 일이 없다고 부임하면서도 원고인 법무부장관과 화해하기로 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라나 또다른 명문 MIT는 공동피고인이면서도 문제의 관행이 독점금지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화해조서에 서명하기를 거절했다.
다른 한편 오는 6월 중순 한국을 첫 방문하는 예일대 슈미트총장은 자기도 법률가로서 판단해볼 때 문제의 관행이 위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소송은 너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법원에서 다투는 것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즉 그 관행은 가난한 학생들을 공평하게 취급하려는 의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같은 관행은 스탠퍼드와 남가주대학을 포함하여 미국의 50여개 명문사립대에서 문제가 되어 지금도 계속 조사중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법무부의 조사 및 개입, 그리고 당해 대학들의 자진해결이 과연 대학의 등록금을 올리게 될지 내리는 결과가 될른지가 한해에 약 2만5천달러 정도의 학비를 부담하는 학부형으로서는 가장 궁금한 일이다.
장학금․연구비 豊年,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6. 7.
원래 대학교육은 국가가 도맡아서 운영하지 않는 한 돈이 엄청나게 든다. 그 돈의 많은 부분이 결국 수익자인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부모가 교육비를 충분히 댈만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스스로 벌어서 충당하거나 장학금을 찾게 된다. 그런데 장학금의 개념도 나라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예컨대 영국 등의 경우는 장학금이란 대부분 액수도 크지 않고 받은 학생의 명예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반하여 미국의 경우에는 명예로운 소액장학금도 있지만 대개 액수가 학비전액이나 수업료면제에서부터 생활비 및 학비일체를 지급함으로써 현실적으로 학생의 학업수행을 가능케하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도 학생의 40% 남짓이 장학금을 받고 있으므로 표면적으로 수혜율만 비교하면 서울법대와 대동소이하다.
요즈음 하버드대학의 각종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우수한 학생들이 각종 장학금을 받았다는 기사가 가득하고 연구에 몰두하는 교수들이 큼직큼직한 연구비를 받고 기뻐하는 사진을 게재하기 바쁘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우나 우수한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소극적 미봉적 장학금이 아니라 각분야에서 가장 창의적인 젊은이에게 지급하는 경우, 자기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견에게 다시 한번 두뇌충전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장학금의 경우, 이미 성취한 업적을 칭송하는 경우, 심지어는 학생회가 자기네를 가장 잘 가르친 선생님을 뽑아서 상을 드리고 교수방법에 관한 연구비를 드리는 경우 등 참으로 다양하고 풍부하고 기발하고 공정한 실력위주 사회의 문화양태가 엿보인다.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지급하는 측에서 부당한 간섭도 하지 않고 1년 미만의 기간내에 무조건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무리한 요구도 거의 없으며 반드시 수혜자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와 연결되어 활동하게 함으로써 연구성과의 확산과 공유를 촉진하는 등 우리가 운영상 눈여겨볼 점도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풍부하고 다양한 장학금과 연구비가 조성되어 순수하고 공정하게 학문발전의 기폭제로서 잘 쓰여질 날은 언제일까 생각해본다.
제310회 졸업식,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6. 14.
미국은 5월 하순부터 졸업시즌인데 하버드는 다른 대학보다 좀 늦어서 6월 6일 졸업식을 거행했다. 두어달 전에 하버드야드에 뿌린 씨가 제법 자라서 푸른잔디가 싱그럽고 전날까지 내리던 비도 말끔히 가셨다. 메모리얼교회 남쪽계단에 천막을 쳐서 단을 가설하고 건너편 와이드너 도서관 앞까지 의자가 놓였다. 공중에도 선홍색 바탕에 각색 문장을 도안한 단과대학과 하우스들의 깃발이 크게 분위기를 돋군다. 졸업식은 오전 오후에 걸쳐서 진행된다.
이미 배부된 입장권에 따라 아침일찍부터 학부모와 동창생들이 자리를 잡고 교수들은 각자의 가운과 모자를 쓴 차림으로 총장실 앞에 모여서 졸업식장 단상에까지 행진한다. 이때 길 양편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늘어서서 행진하는 교수들에게 끝없는 박수로서 경의와 환영의 뜻을 표한다. 나에게도 어느 학생이 장미꽃 한송이를 불숙 내밀고 싱긋 웃는다.
동창생중에서 장내정리와 의전을 담당하는 마샬을 돕는데 남자는 연미복에 모닝해트를 쓰고 작은 바통을 들었으며 여자는 힌색 투피스에 붉은 어깨띠를 두르는 전통이 있다. 금년에 교수들의 행렬을 인도한 수석마샬은 하드법대 수석졸업후 현재 메사추세츠 주지사인 윌리엄・웰드 동문이 뽑혔다. 밴드의 연주가 계속 요란하지만 그가 10시에 교회의 종을 침으로써 식이 시작된다.
단상에 초대된 손님은 전직총장・재단이사・케임브리지와 보스턴 시장・학교발전에 기여한 동창생과 명예박사 수여예정자 등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사보다는 오히려 동창생과 지역사회 지도자들을 힘써 초청하는 듯한 인상이다. 맨처음 학부과정의 최우등자가 라틴어로 졸업생인사를 한다. 20년간 총장재임 후 스스로 떠나가는 데릭・복 총장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연설의 주내용이었다. 사제간의 윤리가 무너지고 일제의 권위가 부정되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이 학생의 평범한 라틴어 연설이 내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명예박사학위수여는 당일까지 비밀인데 금년에는 9명이 받았다. 아동학대방지를 위하여 평생을 보낸 흑인여자도 있고 음악가도 2명이나 있지만 전 소련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압권이었다.
학위수여는 학장이 나와서 자기학부학생들이 소정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음을 보고하고 학위수여를 건의하면 총장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집행한다.
단하에 앉은 학생들은 자기네 차례가 오면 모두 일어나서 환성을 지른다. 의과대학 차례세서는 학생들이 일제히 수술장갑을 불어서 풍선을 만들어 띄웠고, 경영대학생들은 각나라 국기를 흔들었으며 법대생들은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교수를 더 채용하라는 플래카드를 치켜세웠다. 오전의 식전은 들뜬 분위기속에서 질서있게 11시반에 마쳤고 오후행사가 총동창회주관으로 2시15분부터 열렸다.
오후행사의 중심은 졸업생을 위한 기념연설이다. 금년에는 셰바르드나제와 복총장이 나와서 핵무기군축과 대학의 사회적 사명에 관하여 각각 기억에 남을 만한 연설을 했다. 젊음과 지성이 어우러진 대향연이었다.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6. 21.
하버드대학에는 유니버시티 프로페서라는 제도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을 해보았자 대학교수라는 말 외에 다른 적절한 단어가 없어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 제도는 1930년대에 이 대학 총장이었던 제임스・코넌트박사가 1934년의 총장연례보고서에서 잘게 쪼개진 어느 한 학문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자신의 창조적 연구나 사상을 좀더 거시적으로 모든 대학식구들에게 자유로 가르칠 수 있는 유니버시티 프로페서의 도입을 주장한데서 비롯된다.
이같은 지위에 임명된다고 하는 뜻은 개인적 학문적 탁월성이 자기가 본래 전공한 학문분야를 훨씬 초월하여 진리와 보편적 지식의 개척자인 동시에 그 파수꾼으로 인정을 받는 최고영예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그가 원하면 연구를 위하여 강의를 안할 수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각 단과대학이나 학과를 순회하면서 인간의 근본적 문제제기, 창조적 연구결과의 전달, 새로운 사상적 전개, 학문간 협동연구의 촉진 등을 위하여 몇학기씩 수업을 하기도 한다.
코넌트총장의 제안이 채택되어 이 제도를 설립한 것은 1935년이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은 하버드대학 개교3백주년인 1936년에 이를 기념하는 모금으로 마련되었으며 1937년에 비로소 하버드대학의 첫 유니버시티 프로페서가 탄생하였는데 그가 곧 유명한 법학자인 로스코・파운드 교수이다.
지금 현역인 사람은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역사학의 버나드・베일린, 경영학의 로랜드・크리스틴슨, 노벨생물학상을 받은 월터・길버트, 노벨의학상을 받은 데이비드・휴벨, 도덕철학의 존・롤스, 경제학의 헨리・로소브스키, 경제학 및 철학의 아마티야・센, 영미문학의 헬렌・벤들러, 정부론의 시드니・버바, 법학의 프랭크・마이클맨, 그리고 금년 6월말 자진 퇴임하는 데릭・복 총장(법학)의 11명이다. 복총장은 이례적으로 퇴임직전에 임명되었으나 이것이 결코 그의 총장재임시의 업적을 치하하여 주는 공로상적 성격은 없다.
과거의 유니버시티 프로페서를 보면 은퇴한 분으로는 퓰리처상을 두 번 받은 문학전기작가 월터・잭슨・베이트,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니콜라스・볼룸버그, 법학자로서 닉슨행정부의 워터게이트사건에 특별검사였던 아치발드・콕스, 노사문제전문가 존・던롭, 그리고 역사학자인 오스카・핸들린 등이 있고 작고한 학자로는 위에 말한 파운드 교수 외에 역사학자 워너・재거, 문학자 아이・리처즈, 신학자 플・틸리히, 노벨의학상의 존・프랭클린・앤더스, 일본학 대가로서 주일 미국대사를 역임한 에드윈・라이샤워 등이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미국이 낳은 세계적 석학이 다 모여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금행사 참관,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6. 28.
미국대학의 총학장들은 학교발전을 위한 기금모금에 자기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학교내에 학교발전과 동창관계업무를 담당하는 부총장 기타 부서가 있고 총학장들은 이들 직원과 함께 기금을 출연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출장가서 만나고 설득하고 학교행사에 초청도 한다. 주립이나 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의 재정이 어려운 만큼 역시 모금을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총장으로 인정받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버드의 경우에는 한 대학교 내에서도 유수한 단과대학들은 독자적으로 모금활동을 한다. 법대의 경우에도 현재 학장의 취임전에 장기발전위원회가 교수・동문・학생 등의 참여로 발족되어 3년반 동안 하버드법대가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계속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하여 필요하거나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수십번 토론하였다. 그들은 현재의 추세로 나가면 1990년대 말부터는 법대가 매년 7백만달러씩 예산 적자에 허덕일 것이라는 보고에 놀랐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풍부한 법률도서관으로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1백50만권의 서적 중 약 3분의 1가량이 안전하게 보관하기 어려운 형편이 드러났으며 석좌교수도 12명가량 증원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항의하였다.
이에 필요한 기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1995년 6월말까지 1억5천만달러 (약 1천여억원)를 모금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발족하는 거창한 행사를 참가자의 비용부담으로 6월 중순의 주말에 이틀간 학교에서 개최한 바 있다.
유서깊은 랭델도서관 4층 열림실을 치워 임시로 에어컨을 가설하고 유명한 졸업생의 초상화와 유품을 실내주위에 진열한데다가 조명을 맞추어 놓음으로써 장중한 분위기 속에서 공식만찬을 가졌다. 법대학장이 특별히 작곡한 음악을 법률도서관장이 트럼펫으로 연주했고, 실내악이 연주되는 속에서 금년 9순이된 그리스월드 전임학장 등 몇분 동문들의 회고담과 슬라이드 감상, 저녁에는 랭델도서관앞 잔디밭에 가설한 텐트무대 속에서 각국 음식으로 장만한 뷔페와 덴스파티가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실제 모금활동은 작년부터 추진되어서 현재 목표액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4천8백80만달러가 이미 약속되었고, 그중에서 3백만달러를 기부한 일본 노무라증권의 대표, 약1백만달러를 기부한 대만의 학부형, 사우디의 석유장관 등 외국 동문 외에 미국전현직 상하의원, 기업인, 법조인들이 8백여명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系 학생들의 고민,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7. 5.
요즘 미국의 우리 교포사회에서는 큰 불만이 한가지 있다. 본국의 TV연속극이나 소설 등 작품의 경우에 왜 미국교포를 등장시켜서 갖가지 일그러진 모습으로 묘사하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본국에서 대학입시에 실패한 젊은이들과 단체관광객들이 몰려와서 웬 돈을 그렇게 많이 쓰고 과소비와 사치를 하느냐는 걱정도 많다. 며느리를 고를 때는 낭비와 사치를 보고배운 한국아가씨보다는 노동의 신성함과 돈의 귀함을 체득하고 합리적 사고방식을 가진 미국교포 아가씨를 맞이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런데 하버드대학에는 교포의 자제와 한국유학생을 합치면 법대의 50명을 비롯하여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서 한국계가 가장 많다. 매년 1만여명의 입학지원자중에서 가장 흔한 성은 스미스나 존스가 아니라 김씨라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나 대학을 수석졸업하고 하버드에 온 학생들이어서인지 서울법대학생들에 못지않게 우수한 것이 양쪽을 모두 가르쳐본 결과 받은 인상이다.
다만 이곳의 학생들은 자유토론 속에서 창의를 개발하여 학습하는 훈련이 되어있음에 반하여 한국학생들은 주입식 강의를 받고 그 결과를 주로 암기한 다음 이를 나중에 활용하는 편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하버드 캠퍼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한국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할뿐 아니라 금년법대를 3년 최우등으로 졸업한 학생도 교포자제이다. 그러나 이들은 고민도 많다. 우선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에 관한 연구과제를 정한 경우에도 너무나 막연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여야할지 방황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서 본인이 과연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항상 자신의 정체에 관한 위기감이 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어느 대학원에 갈 것인지, 아니면 장래계획과 관련하여 한국사회로의 진출가능성, 그리고 그렇게 했을 경우에 미국사회진출의 경우와 비교하여 확신이 서지 않는 표정이다. 이와 같은 개인적 진로에 대한 고민은 미국인 지도교수와도 상담할 수 없는 만큼 심각한 경우도 많다. 학생들과의 상담에 무척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 영재들의 나아갈 길을 시원히 밝혀주고 이와 같이 우수한 인력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거시적이고 종합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공무원 해외연수,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7. 19.
선진국의 학문과 문물을 배우고자 젊었을 때에 유학을 가거나 중년이 된 후에도 다시한번 머리를 재충전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정부도 공부원해외파견계획을 세우고 많은 예산을 들여서 젊은 판검사 등과 행정부 사무관들은 물론 국장급의 상위직 공무원들까지도 매년 외국에 보낸다.
이와 같은 인력훈련정책의 장점이나 해당공무원이 얻게 되는 혜택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으려니와 나라형편이 허락하는 한 이같은 프로그램은 점차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 하버드대학이나 미국동부 유명대학으로 쇄도하는 각종 입학지원신청을 심사, 상담 또는 전화문의를 받는 과정에서 몇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젊고 야심많은 판검사 사무관 등에게 석박사 학위취득을 강요하며 얽어맬 필요가 없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서 원하는 사람만 학위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그 외에는 본인의 근무경험에 비추어 꼭 알고싶은 선진국의 제도나 배울점을 자유로이 비교연구할 수 있도록 유도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국장급 연수계획의 필요성도 두말할 나위가 없으나 이 제도가 처음에는 위로출장을 보내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듯 하더니 요즘에는 완전히 고급공무원 인사적체해소를 위하여 해외에 국장급자리를 증원한 것과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일단 선발되고 나면 그 사람의 전공과 희망과 직무경험에 비추어 적절한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 가서 배울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서비스나 제도적 장치는 없고 오히려 정기인사이동에 지장이 없도록 빨리 출국하라고 재촉을 해대니 당사자들은 무조건 출국하여 얼마동안 국제고아처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게 되고 만다.
또한 어느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리를 잡게 되어도 그곳의 학기나 회계연도의 중간에 끼어들어서 그들이 진행하는 전체적 프로그램에 처음부터 참여하지 못하고 혼선과 낭비를 겪기도 한다. 요컨대 인력을 선발하여 출국할 때까지의 초기단계에서는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명확한 소개와 도움을 주어 준비하도록 하고 귀국 후에는 이같은 귀한 인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활발한 토론․강연,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7. 26.
우리나라는 토론의 문화가 없다고 한다. 이는 옛날부터 수직적 구조에서 화합을 추구하는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하고, 광복 후 주입식 교육일변도 현상으로 말미암아 질의토론보다 암기를 위주로 한 학습결과라고도 하며 심지어는 군사혁명 이후 극심한 정보정치 때문에 입조심하느라고 토론과 비판의 전통이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등 저마다 원인분석이 다양하다.
그 이유야 어디에 있든지간에 하버드대학에서 수업중 학생을 접해보면 교포자제들은 자기나름대로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발표하고 질문도 대단히 많다. 그러나 옆좌석에 앉아 있는 본국 유학생들은 대조적으로 조용하고 묻는 말에나 간단히 대답한다. 강연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실 하버드대학의 좋은 점은 분야별로 이름있는 학자나 저명인사들을 힘써 초청하여 강연이나 쎄미나를 끊임없이 개최하는 그 지적 풍부함과 지성적 분위기에 있다고 하겠다.
하버드법대의 경우 지난 1학기 동안 동아시아법률연구소의 강연일정을 훑어보면 일본과 중국에 관한 강연은 제목도 다양하고 연사도 참으로 그 층이 두터워서 부럽기 한량없으나 한국에 관하여는 필자가 한차례 한・미통상관계에서 우리의 입장을 옹호하는 강연을 한 것 이외에는 단 한번도 없어서 대단한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한국법에 대한 연구자가 거의 없어서인지 금년 전반기 몇 달동안에 미국전국에 걸쳐 10차례 이상 한국과 한국법에 관한 강연여행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강연의 형식은 중요하지 아니하다. 공고를 보고 관심있는 사람은 교수나 학생을 막론하고 샌드위치 점심을 들고 와서 탁자주위에 둘러앉는다. 먹으면서 듣고 적고 질문과 토론을 벌이고 좀더 깊이 알고싶은 것이 있으면 따로 만나서 더 이야기하고 전문가와 연결시켜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가 향상된데 비례하여 저들이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만큼 미국대학사회에서 한국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노력도 외교활동 못지않게 중요하다. 또한 자주 열리는 토론의 광장에 적극 참여하여 경험을 공유하고 현안문제를 보는 다양한 그들의 시각에 접하는 한국인들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다.
옌칭도서관, 한국일보 하버드통신 하버드 통신, 1991. 8. 2.
한나라의 학술수준과 문화의 척도는 도서관의 수와 이용도에 의하여 가늠할 수 있다. 동네에 공공도서관하나 없고 신도시나 새로운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경우에도 도서관을 짓는다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물질적 성장에 비추어 너무나 정신적으로 속빈 강정인 셈이어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버드대학에만 102개의 도서관이 있거니와 한국학을 종합적으로 공부하는데에 옌칭(燕京)도서관의 존재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 도서관은 중국,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학연구를 지원하는 귀중한 기관이다. 옌칭도서관은 소장하고 있는 귀중본들, 남북한자료의 수집활동 및 연구자에 대한 서비스등의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매년 옌칭스칼라십에 의하여 한국의 중견학자들이 1년씩 연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다. 국내외를 통하여 오랫동안 못찾던 옛자료를 옌칭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기뻐하는 학자도 보았고 국내에서 망실된 조상의 옛기록과 족보를 이곳에서 찾고는 눈물을 흘리는 방문객도 보았다.
그러나 이곳에도 어려운 점은 많다. 한국장서는 일본이나 중국의 것에 비하여 너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취약한데 적은 인원과 한정된 예산으로는 이곳이 한국학 연구의 본산이 되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다. 물론 국내의 학술진흥재단 기타 몇곳에서 한해에 몇백만원씩 보조를 받기도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국내의 유수한 도서관들과 안팎으로 교류 및 협조의 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이해부족, 무관심 기타 관료주의 등의 이유로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수가 많다. 이제 우리는 도서관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여 미국내 한국학 연구센터로서 옌칭도서관을 육성하는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敎授의 대우,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8. 9.
대학교수에 대한 봉급 기타 대우가 충분치 못하다는 불평은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한달 용돈이나 될까말까 했던 봉급수준이 그나마 대폭적으로 개선된 것은 유신선포 다음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꾸준히 공무원보수 인상률에 따라 인상되면서 연구수당이 추가되는 형식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아무 잡념없이 한창 연구와 교수활동이 왕성해야 할 젊은 교수에 대한 월급봉투가 너무 얄팍하고 장년층 이상의 중진・원로교수의 보수는 다소 많다고 하더라도 자녀교육이나 인륜대사를 감당하기 어렵다. 교수에 대한 경제적 대우는 물론 사회적 존경도는 독일이 가장 앞서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면 하버드대학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선 인문사회계의 보수수준은 대단히 낮고 법과나 경영과등 전문대학원의 교수들이 훨씬 더 높은 봉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보수마저도 실무계에 진출한 제자의 초봉보다도 비교가 안되게 적다. 가령 하버드법대를 졸업한 학생이 뉴욕시내의 법률사무소에 취직하면 8 내지 9만달러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대도시의 높은 물가와 주택비 출퇴근비 등을 감안하면 빠듯한 액수인데 우수한 학생이 법대의 교직에 남는 경우에는 이와 비교가 되지 아니한다. 물론 봉급수준은 철저히 개인별로 학교당국과 협상하여 결정되고 비밀이 유지되는 법이지만 대개 5-6만달러선에서 낙착되고 오래 근무한 교수의 경우에도 10만달러가 조금 넘는 정도이다.
절대액수로서는 많아보이지만 연방세, 주세, 시세, 사회보장부담금 등을 공제한 다음 은행융자를 얻어서 구입한 주택과 자동차에 대한 월부금을 꼬박꼬박 갚고 나면 마음놓고 외식한번 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 된다. 물론 저서가 잘 팔려서 부수입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아주 드문 경우이고 글을 써서 게재하였다고 하여 원고료를 지급받는 경우도 별로 없다. 오히려 게재료를 집필자가 납부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외부자문을 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는 법대교수들도 있으나 이것도 극소수이고, 교수의 이같은 활동에도 1주에 몇시간 이하라고 하는 한도가 설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연구라는 본래적 업무가 희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우수한 젊은이를 찾아보고자 노력하였으나 모두들 사양하는 것은 이와 같이 너무 낮은 보수수준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강의와 시험,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8. 16.
대형강의실에 들어가보면 반원형 계단식으로 배치된 좌석에 갖가지 피부색의 남녀학생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커피나 콜라를 마시는 학생, 음식을 우물우물 먹는 학생, 애완용 동물을 껴안고 있는 학생 등 가지각색이다. 일일이 출석부르는 시간낭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미리 작성되고 사진이 붙은 좌석배치표에 따라 빈자리만 체크하고는 강의가 시작된다. 학생들은 학기초에 배부한 강의요목에 따라 그날의 수업범위와 내용을 잘 알고있고 이미 예습도 해온 터이나 교수가 발표할 학생을 지명하고자 한번 둘러보는 순간 실내에는 전류가 흐르듯 긴장이 감돌게 된다.
영미법은 판례들이 쌓여서 형성된 법체계인만큼 학생들은 주로 중요한 판례의 사실관계와 법원이 그와 같은 결론으로 이끌어간 이유가 무엇인지 발표하도록 지명을 받지만 교수가 계속하여 원고의 입장은 무엇이고 피고의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 판결에 나타난 소수의견은 어떤 것인지, 판결에서 내린 결론과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 질문을 퍼부어대면 얼어버리는 수가 많다. 그러나 교수들은 외국 유학생들을 여간해서 지명하지 아니한다. 언어의 장벽을 고려하고 시간 낭비를 방지하자는 뜻이 아닌가 한다. 논점이 대체로 부각된 연후에는 교수가 논리전개의 가닥을 추려주고 적절한 논평을 한다. 이 단계에서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도중에도 스스럼없이 질문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은 사실관계를 분석하는 능력과 자기주장의 논리를 세우는 훈련을 쌓아간다. 따라서 우리와는 달리 시험을 보는 경우에도 교수의 강의나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였다가 그대로 답안지를 메우는 암기력 테스트가 아니다. 대개 주어진 3-4시간동안 책과 노트를 보아도 좋도록 허용하는만큼 무엇을 꼭 외울 필요성도 거의 없다. 또 과목에 따라서는 그동안 배운 책의 분량이 2천페이지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학생들이 이를 모두 암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시험을 부과하고 채점하는 교수도 판사의 판결처럼 유일한 정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므로 복잡한 사안을 분석하고 만일 자기가 그 사안에서 어느 한쪽 당사자의 대리인이라면 어떤 논리로서 주장을 전개하여 법원을 납득시킬 것인지 그 과정과 이유를 잘 쓰면 된다. 시험답안지는 표지가 연한 청색인 공책(블루북)인데 대체로 손으로 쓰거나 타지기로 답안을 작성하여 제출한다. 교무과에서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하여 마치 사법시험 답안지를 취급할 때와 같이 수험생의 신분을 감추고 일련번호를 메긴 후 편철하여 담당교수에게 송부한다. 교수가 채점하여 성적일람표를 제출하면 이번에는 교무과에서 학생의 이름과 성적을 공개한 일람표를 다시 담당교수에게 보내면서 혹시 학생에 따라서 성적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으면 이를 정정해달라고 요청한다. 백지답안이 제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만큼 모두들 그 나름대로 성적을 취득하고 F학점을 받는 경우는 없는데 그래서인지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쉽다는 평이 있다.
교수강의 평가제,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8. 23.
우리나라에는 군사부(君師父)일체라고 하거나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말라는 옛말과 같이 스승을 공경하도록 가르쳐왔다.
오늘날 사제관계가 땅에 떨어졌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으나 아직도 비교적 우리 학생들은 자기네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경의로써 대하고 훈훈한 인간관계가 성립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사제관계를 기본적으로 기능적 계약적인 관점에서 보는 서양과 다르고 학생을 가르치는 보람을 한국에서 더욱 느낄 수 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한다. 학기마다 학기말시험을 치르게 되면 매과목 시험시간을 시작할 때마다 학생간부들이 들어와서 한 학기간 그 과목을 가르친 선생님의 강의내용과 코스에 대한 평가설문서를 배부하고 시험시간 후에 이를 회수해간다. 설문서의 문항은 19개항목으로서 다섯단계로 등급을 매기도록 짜여있다. 첫째 담당교수에 관하여 그가 학생들의 관심사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 교실밖에서의 접근 가능성, 주제에 대한 지식, 강의의 명료성과 체계성, 학생질문에 대한 반응정도, 다른 견해에 대한 포용정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총체적 효용성 등을 묻는다. 둘째 교과내용에 관하여는 주제의 흥미, 난이도, 중요성, 관련성, 기타 총체적 유용성을 따져본다. 셋째 교재와 숙제 및 공부부담에 관하여는 교재의 체계성, 흥미, 질적 수준, 숙제의 코스와의 관련성, 숙제부담, 코스진행속도 등으로 나누어 평가를 구한다. 넷째 교수의 가르치는 스타일과 방법에 관하여 일방적 강의인지 문답식인지 학생의 참여를 얼마나 허용하는지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설문지를 회수한다음 과목마다 수강학생수, 응답자수 및 코멘트를 한 응답지의 수를 밝히고 항목별로 5등급에 의한 수치를 통계화하며 학생들의 코멘트를 요약하여 종합적 평가를 한다. 이 자료는 매년 두툼한 책자로 간행되어 영구보존됨과 동시에 누구나 열람가능하도록 공개된다.
교수에 따라서는 이 자료에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전연 신경을 쓰지않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거나 학생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듯한 사람도 있다. 또 여기에 나타난 평가가 그 교수의 국내외적 명성이나 실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이 책자는 교수자신과 학생과 학교당국 모두에 반성의 기회를 주고 여러가지 면에서 참고자료로서 활용되고 있다.
예산절감,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8. 30
아무리 국민소득이 1인당 5천달러가 넘어도 우리에게는 소비보다는 절약이 미덕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정부나 기업이나 학교등 단체에서는 더군다나 불요불급한 비용지출을 억제하고 낭비를 줄여야 한다.
특히 학교의 경우에 교육과 연구에 사용되는 예산보다 행정지원부문에 비용지출이 더 많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셈이다.
하버드대학의 경우에는 재정담당 부총장의 주관하에 1979년부터 예산을 절감하고 비용효과를 높이는 12개년 계획을 꾸준히 추진하여왔다. 한편으로 기금모금에 박차를 가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절감에 노력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과거에는 격변하는 80년대의 상황에 부응하기 위하여 대학이 새로운 행정기구를 설치하거나 기존기구의 지출이 증가한 경우가 많아서 하버드의 강점인 전문대학원들의 비용지출보다 늘어나자 이같은 추세를 뒤집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왔다.
그 결과 금년 학기말에 와서는 지난 12년간 각종 전문대학원들의 비용증가가 10.2%에 달했음에 비하여 행정비용은 중앙도서관과 개발처 등을 포함하여 9.1% 증가에 그치는 성과를 올린 덕분에 보건・신학・교육・디자인 대학원등에 좀더 많은 기금을 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금년 7월부터는 행정기구들의 씀씀이 증가가 대학이 예측한 인프레율을 넘지 않도록 목표가 정해졌다.
이에 따라 시설관리, 식당, 교수회관, 대학부동산 등 서비스 분야에서 기구통폐합, 시설장비구입 개선, 전화 등 통신시스템의 개선, 시간외 수당을 줄이는 통합근무일정짜기, 계절적 서비스의 외부용역발주, 각종 간행물 통폐합, 여행일정과 여비지급방법개선, 정보처리기술활용으로 인한 지연과 중복제거, 에너지절약, 도서 구매방식개선 등을 통하여 획기적 비용절감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내부의 전문교수와 외부 자문기관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비용절감이 가능한 항목을 찾아내고 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절감된 행정비용이 각 단과대학이나 연구소의 교육연구에 재투자될 가능성 때문인지 이같은 비용절감계획에 교직원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이디어가 백출한다는 점이다.
자기네의 예산을 줄이는 데에 좋아할 사람이 없겠지만 위에서부터 일률적으로 몇 %를 깎아야 된다는 획일적 지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호응도가 높은 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볼룸댄스 熱氣,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9. 6.
근년에 외국여행을 다니면서 공식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한가지 볼 수 있었다. 만찬에 초대시에 새삼스럽게 턱시도를 입고 오도록 요구하고 만찬후에 음악과 춤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도 볼룸댄스가 주류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버드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진보적 분위기속에서 옷차림이나 기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디스코류의 춤 대신에 월츠, 차차, 퀵스텝, 폭스트롯트, 탱고와 같은 무도회 스타일이 급속하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학부학생들은 작년에 비로소 볼룸댄싱클럽을 조직했으면서도 뉴잉글랜드 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2등상을 획득할 만큼 열심이다. 하버드나 MIT가 이같은 댄싱강좌를 개설하면 순식간에 백명이상 신청이 쇄도하여 연습실이 넘치고 매일 2시간씩 주당 5일씩 연습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옛날 궁정무도회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옛날의 낭만과 추억을 회상하면서 참가하는 노장세대가 무도회장의 복고풍을 더해주는가 하면 요즘 새로 배우는 젊은이들은 몸짓이나 스텝을 창조적으로 변형시켜가면서 밤새도록 즐긴다. 그리하여 노장청(老壯靑)간에 세대 간격을 극복해주는 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학생들은 공부부담에서 해방되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레크리에이션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들은 이를 스포츠로 생각한 나머지 1996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것에 대비한 준비를 하기도 한다. 이같은 학생들의 새로운 열기에 부응하여 던스터 하우스나 더들리 하우스과 같은 일부 생활공동체에서는 볼룸 댄스클럽을 조직하고 교습과정과 무도회를 개최하기도 하며 퓨시 도서관에서는 자료와 사진 등에 관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반대하던 성난 젊은이들과 히피세대들의 반항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정치적 보수성향의 등장과 발맞추어 부활되는 볼룸댄싱의 인기는 금석지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정녕 복고풍이 앞으로 한 세대를 풍미할 것인가.
교수초빙 조건,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9. 13.
교수를 새로 채용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만은 우리나라 대학이나 외국의 경우나 마찬가지인듯 하다.
하버드법대의 경우에 과거 몇년간 진보적인 비판법학파와 그외의 보수적 성향을 가진 교수들간의 의견대립으로 교수의 신규채용 기타 인사문제에 어려움을 겪어온것은 상당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최근 몇년간는 다른 대학의 교수를 한학기나 1년간 방문교수(Visiting Professor)로 초빙하여 가르치게 한다음 평판이 좋으면 영구적으로 주저앉게 하는 방법을 통하여 교수를 확보하여왔다. 그러한 경우에도 막상 교섭을 하다보면 대체로 두가지 난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처럼 자녀교육상 서울을 떠날 수 없다든가 하는 이유가 아니라 배우자의 직장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주택확보를 위하여 대학당국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가 초점이다. 대체로 맞벌이 부부인만큼 남편이 다른 곳에서 하버드로 직장을 옮기면 부인도 대학내에 비슷한 자리를 구해서 같이 따라올 수 있는지, 아니면 부인이 본래의 직장에서 연구계획이나 기타 프로그램에 몇년에 걸쳐 협동근무하기로 약속을 한 경우 이를 정리할 때까지 기간을 유예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등이 주로 문제가 된다. 주택매수도 하버드가 보유한 주택을 특별히 교섭한 조건에 따라 임차 또는 매입할 수 있는지, 일반주택을 학교의 도움이나 융자를 받아 매입할 수 있는지 등등 아주 세밀한 사항까지 끈질기게 협상을 벌인다. 켐브리지 부근의 주택사정이 나쁘고 집값도 아주 높은만큼 주택을 조금이라도 학교의 도움을 받아 투택을 얻은 경우,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기 전에 퇴임을 하는 때에는 대학당국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주택매매를 통한 과도한 양도소득을 취할 수 없게 되어있다.
캠퍼스 防犯,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1991. 10. 4.
캠퍼스면적이 넓고 학교규모가 크면 대학이 학생들의 안전・시설보호・교통질서 등 크고 작은 경비와 질서유지업무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과거에는 경비업무자 몇사람이 담당하던 일이 이제는 교내 차량통행문제 한가지만 해도 주차질서, 교통정리와 사고처리 등 아주 복잡해졌다. 뿐만 아니라 교내에서의 폭력, 성폭행, 시설손괴 등 점차 심각한 사고가 빈발하자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규찰대를 조직하여 야간순찰을 한다는 소식도 있다.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의 큰 대학에는 캠퍼스 폴리스가 있다. 일반 경찰과 거의 유사한 유니폼에 권총을 차고 경찰차를 몰면서 순찰을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정규경찰관으로서 대학에 파견된 사람이 아니고 많은 경우에 대학교 소속이다. 경찰에서 퇴직하여 연금을 받으면서 대학경찰에 다시 취직한 나이지긋한 자도 있고 무술과 사격에 능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정부의 경찰당국과 일정한 업무협정하에 기초적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한도내에서 총기휴대, 현행범연행, 현장조사등을 수행할 권한을 위임받아 캠퍼스내에서 발생하는 살인, 강간, 강절도 등의 범죄에 일차적으로 대처한다. 대부분 학생들은 대학경찰을 주로 주차위반시에 티켓이나 발부하는 원망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규제적이고 억압적이기보다는 보호와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24시간 근무하면서 임시주차증도 즉시 발급해주고 각종 긴급구조활동도 신속하게 펴며 밤늦게 도서관에서 나온 여학생이 무서워하면 아무리 멀어도 집에까지 호송하기도 한다.
우리의 대학들도 이제는 수위 몇명이 이같은 경찰임무를 해낼 수 있는 단계는 지났을 뿐만 아니라 학생규찰대를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점이 많은만큼 대학경찰의 창설을 고려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각종 교수수당,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우리나라에서는 교수의 경우를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보수체계가 복잡하여 본봉외에 그보다 더많은 여러개의 수당이 주렁주렁 추가되어 있다. 반면 공제항목은 간단해서 소득세 외에 의료보험부담금과 연금기여금등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하버드대 교수의 보수구조는 아주 간단하여 이른바 총액임금적 체계를 갖고 있는 반면 공제항목이 복잡한 반대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선 소득세만 해도 연방, 주 및 시에서 각각 공제하고 기타 여러가지 사회보장적 분담금과 심지어 주차장 사용료까지 매달 뗀다. 그런데 하버드 법대의 경우 월급외에 매학기초마다 각 교수가 그 학기중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수당의 한도액이 통보된다. 가장 큰 액수는 연구활동비이다. 이는 주로 교수가 연구활동의 보조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임시고용하는 학생들에게 시간당 7불 50전씩 계산하여 지급하는 데에 주로 쓰인다. 그외에도 도서구입비, 접대비, 기타 잡비 등의 항목으로 나뉘어 수당이 책정되어 있다. 접대비는 주로 방문객이나 초청연사의 식사대접, 학생들과의 간단한 다과회 등에 지출되는데 교수클럽의 청구서나 외부식당의 영수증을 첨부하여 정산한다. 이경우 각 교수들에게는 교수클럽을 드나들 수 있는 카드가 부여되고 교수가 접대비를 직접 대학에 청구할 수 있는 대학고유의 회계번호가 주어지므로 이같은 방식을 이용하면 정산절차도 간단하고 비정상적 지출관행도 방지될 수 있다. 어느 경우든지 한번도 현금지급이 개입되는 일이 없고 컴퓨터에 기록되어 전체지출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항목유용은 합리적인 범위내에서 허용되지만 학기말까지 정해진 한도액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면 잔액은 학교에 반환된다.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하버드대학의 도서구입이 극히 신속하고 철저하여 도서구입비항목의 지출은 별문제가 없으나 접대비와 연구활동비는 활동이 많은 교수의 경우에 다소 부족한 때도 있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을 개인적으로 계약하여 학기당 500시간 이상의 연구보조를 받을 수 있는 일방 행정적 업무를 능률적으로 처리해주는 학교비서가 있으므로 교수자신의 연구의욕이 왕성하면 대단히 생산적인 업적을 낼 수 있다.
티칭 펠로우, 한국일보 하버드 통신
대학의 사명이 기본적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것임은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좋은 학생을 받아서 훌륭하게 가르쳐내는 것은 즐겁고 보람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연구업적은 학문발전과 과학기술의 진보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이 두가지 임무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 같은데, 미국대학의 경우에는 연구에 더 중점이 두어지고 학생교육을 그만큼 게을리 한다는 비난이 항상 있다. 즉 강의실에서 교수가 앞자리에 서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면 학생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의 수업이 이루어져서 활발한 토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기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경우에도 오랜 세월동안 사정은 비슷한 지 지난 6월말 퇴임한 데릭 복 총장도 학생교육의 개선을 여러차례 주장하면서 댄포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여 개선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하버드에서는 석좌교수, 종신직교수, 신분보장이 안된 주니어교수, 각 하우스의 튜터, 외부에서 일정기간 동안 초빙해온 교수, 그리고 일반 강사들이 학생교육에 있어서의 파트너쉽을 형성하여 가르침을 통한 탁월성 추구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학부과정의 기초교육에서 가장 긴요한 존재는 뭐니뭐니해도 티칭 펠로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면에 잘 나타나지는 아니하나 대규모 강의에는 그들의 보조가 강의의 효율성을 높혀 주고 있다. 이들은 훈련중의 학자이거나 교수가 고용한 대학원생들로서 큰 강의를 분반하여 지도하고 토론을 유도하며 답안지를 채점하기도 한다. 한 교수가 대략 6명이상 또는 20명가량의 티칭 펠로우를 선임 감독하는데 이들은 전체가 한 팀이 되어 격의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교수방법을 상호비판하며 심지어는 새로 부임하여 학교시스템에 생소한 신임교수들의 길잡이 노릇도 한다.
많은 교수들은 이들과의 만남을 정례화하여 코스내용, 교재편찬 등에 관하여 토론을 하기도 하고 강의를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장으로 생각하고, 될수록 많은 피드백을 얻어내려고 한다. 따라서 학문간 협동연구가 가능하도록 교수가 각 분야에서 신중하게 선발한 이 우수한 젊은이들은 교수의 리더쉽하에 상호존경과 협동을 통하여 장차 교수로서의 훈련을 쌓으면서 중요한 연구업적에 참여하게 된다. 대학원생의 4분의 1이 외국인인 실정에 비추어 외국학생의 경우에는 영어실력을 검정하여 선발하기도 하는데 각 분야에서 여러명의 한국 학생들이 티칭 펠로우로서 활약하고 있음은 흐뭇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