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法改正有感, KMDI Bulletin 5(46), pp.1-2, 5, 한국경영연구원, 1981.10.26

정부는 각종 성장발전 저해요인을 적출하여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재산법의 기초가 되는 민법과 상법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 상법은 총칙․商行爲․회사․보험․해상 등 우리의 경제생활을 망라적으로 규율하는 기본법임에도 불구하고 제정된지 20년동안 한번도 손을 대지 아니한 결과 급속하게 발전된 기업활동과 경제현실에 비추어 규범과 현실간에 엄청난 괴리현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만시지탄이 있으나 이 기회에 衆智를 모아서 개정하여야 됨은 도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많은 의견이 학계와 실업계 또는 업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음은 상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제시되는 의견들은 그 하나하나가 일리가 있고 귀중한 것임에 도 불구하고 몹시도 단편적이고 산발적인 감이 不無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신문의 보도는 개정주장의 핵심을 카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일반대중에게는 상법 규정이 불충분해서 부실기업이 많이 생겨났고, 그 대책으로는 예컨대 주식회사의 최저자본금을 높게 法定하면 회사채권자가 보호되리라는 정도의 인식만이 전달되었을 염려가 없지 아니하다.
무릇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에는 그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게 정립되고 그 목표하에서 엄격하게 설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개정할 쟁점을 확정하여야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논의에서는 방향정립에 대한 관심이 적고, 어느 한 일면만을 부각시킨 주장을 하거나 현실감각이 부족한 개정의견도 많이 제시되는 감이 있다.
이 기회에 상법 개정의 기본방향에 대한 일반적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첫째 상법이 기업법인만큼 기업의 조직과 활동에 관하여 시대에 맞지 아니하는 부분을 제거하여야 하는 일방 지금부터 서서히 기업의 거래 상대방인 다른 소규모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상법 자체내에서 강구하도록 하여야 한다. 상법총칙 및 상행위법에서 보통계약 약관을 법제화하자는 제안도 예컨대 독일에서 최근에 제정된 AGB법을 무비판적으로 계수하기보다는 소비자 보호의 측면에서 우리 실정에 맞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商事賣買에 관한 소수의 條文(상법 제67조 내지 71조)들만 보더라도 매도인의 보호에만 치중되어 있으므로 이제는 매수인도 보호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을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요컨대 상법 전편을 통하여 기업거래의 당사자들간에 상치되는 이해관계를 현재의 경제발전단계에 맞추어서 새로 조정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둘째 부실기업은 억제하고 건전기업은 육성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상법상 주된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가 기업이므로 기업이 부실화하여 국가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폐해를 초래함을 방지하여야 한다는 견지에서 여러번 제기된 바 있는 타당한 논점이다. 그러나 부실기업은 여러 의견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주식회사의 최저자본금을 법정하거나 휴면회사를 획일적으로 解散措置한다고 해서 근절되지 아니한다. 더군다나 기업활동을 여러 가지로 제약하는 개정을 해서 矯角殺牛의 결과를 초래하여서도 안된다. 부실기업의 억제와 건전기업의 육성은 상법 독자적으로 조문을 보강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법규와의 합일된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무리한 욕심을 내지말고 상법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논점만 좀더 실제적인 근거를 토대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주식회사의 최저자본금에 관하여서는 3천만원설, 5천만원설 내지 1억원설까지 있으나 어느 의견도 왜 그 액수가 타당한지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진지한 태도로 근거있는 액수를 제시함으로써 국회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현재 등록된 주식회사들의 자본금합계를 산술평균한 수자나 등록세 징수액에서 역산하여 실무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상법은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가장 핵심적 기능을 담당하는 주식회사가 가장 합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여야 하며 그러한 터전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현실과 경제발전단계에 맞추어서 베풀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직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할진대 그러한 경제활동의 中軸的 존재인 주식회사는 능률적이며 신속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법이 뒷받침하여야 한다. 즉 국내외적 기업여건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이사회중심의 능률적 운영의 길을 터주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한다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주주총회 및 이사회의 소집절차를 생략하거나 서면결의의 방법을 도입하여야 된다는 논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주주총회의 최고기관성이 이제는 신성불가침이 아니고, 또한 주주들이 회사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이익배당에만 관심이 있어서 마치 채권자적 지위로 변질되었다고 하더라도 주식회사 각기관간의 새로운 권한분배가 주식회사의 민주화를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따라서 능률적 운영을 위하여 회사기관으로서의 주주총회의 권한은 어느정도 축소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회사경영에 관심있는 개별주주의 관여기회는 여전히 보장되어야 하고 오히려 확대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선출시 누적투표제를 채택하여야 된다든가 소수주주권 행사의 요건을 다소 완화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은 이러한 견지에서 신중히 고려하여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주식회사의 기관에 대하여 손질이 필요하다면 그 기본방향은 회사운영의 능률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선에서 세심한 배려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이번에 시도하는 상법개정, 그중에서 특히 회사법의 개정은 모순, 상치 및 혼란이 겉잡을 수 없는 주변관련 법규와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조세법규상의 터무니없는 강제조항들 때문에 회사가 깨끗이 해산 및 청산을 완료하기 어려운 점, 회사정리법이 부실기업인의 도피구로 악용되는 점, 실물경제의 확대에 상응하여 회사의 자금조달이 다양화․기술화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법상의 전세기적 조항에서 오는 조약은 물론 증권거래법규와의 상호모순에서 오는 불일치점, 외자도입법상의 현실과 상법상의 괴리점, 독점규제 법규가 상법상의 기업결합에 미치는 영향 또는 새로 개정된 무역거래법이 상법상의 외국회사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비송사건절차법상의 미비점 등은 오직 몇가지 현저한 예에 불과하다. 상법의 개정은 이처럼 각종 관련법규간의 갈등과 간극을 제거하는 연관작업도 병행함으로써 그 개정의 효과가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상법이 규율하는 기업활동의 국제화 경향에 비추어 개정작업도 다소 그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필요성은 보험․해상편의 경우에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성립된 통일조약이나 약관 그리고 선진국의 운영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우리의 경제현실에 비추어서 영미법으로 조금 더 접근하는 노력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선 보험법과 해상법의 경우에 세계적으로 영미법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무역, 차관, 자본도입 기타 그 이외의 거래의 경우에도 거래당사자로서 영미제국의 중요성, 대부분의 국제계약이 영어로서 작성되는 결과 불가피하게 영미법적 개념과 분쟁해결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점,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문호를 개방하여 미국 등으로부터 자본 및 기술을 도입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법체계가 허용하는 한 영미규범을 수용하는 노력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상과 같은 개정방향에 따라 우리의 경제현실에 관한 정확한 인식을 기초로 하여 충분한 시일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