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좋은 세상, 2003 우정사업본부 사회공헌활동백서,
우정사업본부, p.18-19, 2004

10년 후 세상을 희망하며
1993년 어느 추운 겨울, 그날도 근형이와 어머니는 병원복도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며칠째 같은 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간호사 선생님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근형이네는 집이 삼척인데, 일주일에 몇 번 있는 항암치료비보다 서울과 삼척을 오가는 경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병원복도에서 잠을 자며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그 부작용으로 백혈구 수치가 낮아 감염의 위험이 높을 뿐 아니라 속이 메슥거리고 온 몸의 통증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몸으로 병원복도 의자에서 한뎃잠을 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병원복도에 아이를 재울 수밖에 없는 근형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미안할 뿐이라며 그저 아이가 견뎌주기만을 기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소아암환자의 약 75%는 근형이처럼 지방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치료병원에서 근거리에 거주하고 있는 환자들은 별 문제가 없지만 먼 곳에서 거주하는 환자들은 잠깐의 치료를 위하여 몇 시간씩 고생을 하며 병원까지 와야 하고, 또한 척추주사를 맞고도 충분한 시간을 쉬지 못한 채 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또한 병원에서 항암제를 계속 맞는 어린이의 경우, 대개 병원 건물만 보아도 속이 울렁거리거나 토할 정도로 병원이라는 환경을 항암치료를 받는 어린이에게는 거부하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어린이에게는 병원에서 주사만 빨리 맞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경제적인 부담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치료병원 인근에 필요합니다. 이러한 환경제공을 통해 치료의 효과도 높아질 것입니다. 또한 항암제로 인해 식욕이 떨어진 상태에서 엄마가 직접 지어주는 밥을 먹는다면, 항암제의 부작용도 훨씬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쉼터에 대한 소아암 어린이와 그 가족들의 높은 욕구와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우리 재단에서는 1993년 소아암 어린이 쉼터마련을 위한 ‘사랑의 카드보내기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운동시작 3년 후인 1996년 6월 국내 최초의 소아암 어린이 쉼터가 개소하여 많은 소아암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현재, 우정사업본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서울지역에만 3개소, 광주, 대구, 부산에 각 1개소씩 총 6개소의 ‘우체국 한사랑의 집’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03년 6월에는 국내 최초의 쉼터가 ‘우체국 한사랑의 집’으로 확대 개소되는 뜻깊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전국에 걸쳐 쉼터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4년에 걸친 우정사업본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임직원들의 인간적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넉넉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도 역시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밑바탕 되어야만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정사업본부의 값있는 사회공헌활동으로 사회의 한쪽에는 우리의 관심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알려지고, 이제까지 우정사업본부가 해왔던 것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에서 다른 기업들의 모범이 되는 큰 역할을 감당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재단 역시 앞으로도 소아암 어린이와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들과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이 실현되도록 앞장설 것입니다. 우정사업본부와 같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기업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기에 10년 후에는 우리 소아암 어린이들 모두가 완치되어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멋진 세상이 되리라 희망할 수 있습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이사장
송 상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