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법의 발전과 국제형사재판소의 출범, 원자력 문화 (울림이 있는 글)
-국제적 인권 신장을 기대하며, 한국원자력문화재단, pp.3, 2003. 1. 신년특집호

송 상 현 (서울법대교수)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는 주제중의 하나가 인도적 개입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인도적 개입이란 예컨대 인종청소, 대량학살, 인도적 원조에 대한 간섭, 민간인의 대량축출, 심각한 전쟁범죄, 기타 반인도적 범죄와 같이 기본적 인권에 대한 대규모적이고도 체계적인 위반행위에 대처하기 위하여 강제적 조치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르완다, 코소보, 시에라 레오네, 소말리아, 앙골라 및 동티모르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항상 대두되었던 논점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일정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국제사회가 이 같은 참사를 중지시키기 위해서 그 나라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중대한 참사가 한 국가 내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가의 통치권자가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기가 불가능하거나 그럴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국제적 정통성의 범위 내에서 또는 이를 넘어서라도 타국이나 여러 국가가 인도적 개입을 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와 같은 비극을 중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살육이 행해지고 있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는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주권절대의 원칙은 한 나라의 국내문제에 다른 나라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주권절대의 원칙에는 한계가 있고, 한 나라가 자국민에게 잔인한 행위를 하거나 박해를 하여 그들의 기본적 인권을 부인하거나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주는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인도적 견지에서 이에 대한 개입이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아니하다.
인도적 개입의 합법성에 관한 논의는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다. 그런데 어느 나라가 자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박탈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를 자행할 때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도적 개입의 관례는 국제법상 또 다른 중요원칙인 무력사용금지의 원칙을 번복할 수 있는 법원칙으로까지 발전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설사 인도적 개입에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적용되어온 일반적 불개입원칙을 번복하고 일반적인 개입권을 확립한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심각한 참사를 방지한다는 목적에서 특정한 조건 하에 제어하기 쉬운 한정된 상황에서 국제사회 자체가 개입함을 합법화하는 가능성의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몇 가지 검토할 문제가 남아있다. 우선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기는 하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적극적 대응이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억지책이 된다는 전제 하에서 평화적이거나 강제적이거나 간에 인도적 개입의 개념과 범위를 다시 성찰해보아야 한다. 전세계의 지속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개입은 정당하고도 보편적인 원칙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 인도적 개입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가이다. 강제개입은 사전에 합의를 하여 다수의 사람에게 중대하고 대규모적인 참사를 저지른 경우로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누가 이를 허용하고 어떤 절차를 통해서 정당화할 것인가이다. 사실 유엔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만 않는다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도록 합의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아무튼 세계평화와 인권보호를 위하여 21세기에 있어서 유엔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는데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이같은 국제인권법의 이상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유엔은 한국 등의 적극적 참여와 노력으로 이번에 국제형사재판소를 창설하였고 우리나라도 판사직에 입후보했으므로 이를 계기로 국제인권법의 획기적 발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