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민주화와 법의 활용, 월간 경영법무 제4호 권두언, 한국경영법무연구소, 1994. 7

宋 相 現(서울법대 교수)
1993.12.15.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어 나라마다 관세장벽 및 비관세장벽이 점차 완화되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관한 무역거래는 대폭 증가하고 아울러 해외투자나 경제협력을 위한 자본과 인력의 이동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자유로워져서 국경은 거의 그 의미가 없어졌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편협한 국수주의적 인식을 고치고 지구촌에서 13위 경제대국에 사는 세계인으로서 할 일을 빨리 재정립해야 한다. 법도 세계화 및 통일화의 방향으로 변화를 겪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법이 오히려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세계화된 통상규범의 좋은 예이고, 국제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각종거래에 적용되는 법규범들도 거래의 신속정확한 체결과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한 필요성과 편의성과 합리성을 토대로 점차 정형화와 보편화의 길로 가고 있어서 국경을 지날 때마다 또는 거래마다 법이 달라지는 경우는 점차 감소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법이 나라마다 다른 경우에도 그 속에 담겨있는 실질적 내용이나 지배원리는 점차 공통성을 띠워가고 있어 보인다.
보통 법을 사회질서 유지수단이라고 하지만 법이 없거나 법을 경시하면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아무리 자본주의국가에서 시장경제체제가 보장되어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법이 있어야 일정한 활동의 큰 틀을 제공해줄 수 있게 되고 법은 또한 그러한 틀 속에서 마음놓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경기규칙을 제공하는 것이다. 법은 이러한 의미에서는 개인의 활동에 대한 지침이 되어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주기 때문에 단순한 질서유지기능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가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촉진요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국제사회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평화유지수단인 동시에 국내사회에 있어서는 발전의 요소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어떠한가?
우선 법은 억압적이고 규제적인데가 법집행기관이 귀걸이 코걸이식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아예 처음부터 법을 지키면 손해이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를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온갖 짓을 다해보며, 일이 극도로 악화되어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법률가에게 가보거나 아니면 그때부터 새삼스럽게 법을 따지고 법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히는 세태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물론 국민들이 이같은 인식을 갖게 된 배경은 이해할만 하다. 식민지시대에 일제가 강압적 통치수단으로 법을 악용했던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또한 정부수립 후에는 지금까지 주로 민간의 창의에 의존했다기보다는 정부주도로 나라를 경영해왔으므로 법도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부의 정책목표달성을 위하여 국민을 끌고가는 도구로만 주로 활용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정통성이 없었고, 관료는 많은 경우 즉흥적이고 편의적 발상으로 법을 주물렀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일반국민이 법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가지고 이를 멀리 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매사를 정치적으로 적당히 처리하려다가 곤란한 경우에 빠지면 그때 가서야 비로소 법대로 엄단한다고 하거나 법이 잘못되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하곤 한다.
정부가 법을 만드는 경우에도 대부분 규제를 위한 입법이고 규제입법을 하는 경우에도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꼼꼼하게 검토하지 아니한 채 주로 여론이나 정치논리에 밀려서 법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정부도 이를 감당할 수 없거나 집행의지가 없고 보니 법이 사문화되거나, 아니면 여론이 나쁘거나 사고가 터졌을 때에만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단속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걸린 사람이 자기의 위법을 반성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나만 재수가 없어서 또는 정치권에 밉게 보여서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계기가 와서 규제나 단속을 완화하기 위하여 법문을 고쳐보았자 공무원이 기득권을 포기할 리 없고 무슨 사고라도 한번 나면 강경론이 우세해져서 도로 원상회복을 하거나 오히려 더 규제를 강화하는 반작용을 가져오는 경우를 본다. 또한 지금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민주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한 입법이나 법적용을 해본 일이 없으므로 법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안가지고 있고, 정부의 규제수단으로서의 법만 있어 왔기에 법이 국가사회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방해가 된다고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야 옳을까? 앞으로 우리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함에 있어서는 국민의 합의로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국민전체가 법이 보장하는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토대로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고르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제는 민주적 방식으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용효과분석을 통한 유인책과 반유인책을 도입하여 조절하는 가급적 간접규제의 방식으로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사에 처음부터 법률가를 장단기 계획수립에 참여시켜서 국내외의 법적 환경의 변화에 미리 대비해야만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정책수행이나 사업경영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아주 잘못된 다음에야 다급하게 변호사를 찾아 그로부터 마술사다운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기업이 새로운 상품의 수출을 위하여 외국시장을 조사하는 경우에 경상계 출신의 마케팅 담당자를 파견할 뿐 법률가를 동행시켜 간단한 법률환경, 예컨대 지적 재산권, 제조물책임법리, 보험제도, 분쟁해결의 메카니즘 등에 관하여도 아울러 조사해 와서 수출전략수립에 반영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법률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정부나 기업이 좀더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결국 법에 의할 수밖에 없다.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나와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긴 하나 그는 수년내에 사라지고 만다. 후진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하여 우수한 기술관료가 어느 단계까지는 국민을 선도하고 앞장서서 끌어갈 수 있으나 그들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그러한 단계를 이미 지났다. 결국은 그간의 관주도적․편의주의적으로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만들어진 모든 법령과 제도를 고치기 위하여서는 다소 더디고 지루하더라도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를 토대로 민의가 반영된 참다운 법의 제정이 급선무이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법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갖게 되고 법이 자기의 일상생활에 직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따르면서 법이 보장해준 틀 속에서 법에 정한 투명한 절차에 따라 자기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기회를 활용하여 민주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통일을 위한 국내외적 노력에 다같이 힘을 합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힘이 강해지고 법은 진실로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럴 경우에만 국가사회가 법률가의 우수한 두뇌를 필요로 하게 되고 법률가의 사회적 역할도 비로소 중요해진다. 지금까지는 일반국민, 특히 정치권이나 관료 그리고 기업들도 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률가를 어떻게 활용하여야 할지도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법률가도 시대적 변화에 뒤떨어져서 항상 분쟁이 발생한 뒤에야 사후구제적으로 뒤치다꺼리만 해왔을 뿐 발전해 가는 사회에서 전진적․예방적․창의적․선도적 기능을 담당해 볼 기회나 능력도 별로 없었다. 어떠한 국가사회에서도 법은 그것의 지배를 받는 사회현상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므로 그와 같은 상호작용이나 반작용에 관하여 연구를 하여야만 과연 그 법이 그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지 아니면 장애요인이 되는지를 알아내어 고쳐갈 수 있고, 또한 어느 특정한 법이나 제도를 집행하고 유지하는데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하여 거두는 효과가 큰지 여부를 분석하여보고 좀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법학이 다른 사회과학과 손잡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법률가의 창의와 국제적 안목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까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