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보자’는 조기유학

문화일보 오피니언 포럼 2001.5.10.(목) 제2911호 6면
宋 相 現(서울법대교수)
한국인들은 들쥐근성을 가졌다는 험담을 들은 일이 있다. 어느 한 사람이 무슨 짓을 하면 맹목적으로 우르르 따라 한다는 의미의 비판일 것이다. 이는 아마도 수천년간 동질적인 사회를 유지하면서 이웃의 침략을 견뎌내기에 급급한 동안 다양한 사고와 비판은 사라지고, 비밀과 독점, 그리고 사대주의와 재빠른 자기 몫 챙기기에 길들여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해외로부터의 섣부른 유행이나 비판에 너무 약하고 무조건적으로 모방 내지 맹종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일본에서 몸에 좋은 음식이나 약이 있다고 하면 금방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히트상품이 된다. 어린이에게 포경수술이 좋다는 외국의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면 자녀를 잘 기르겠다는 야심으로 가득찬 엄마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병원에 줄을 선다. 우리 학생이 미국의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고 하면 국내언론은 취재에 법석을 떨고 그런 중에 가끔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젊은 엄마들은 허위사실조차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자식의 조기유학을 위한 결심을 더욱 굳힐 뿐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고등학교과정으로 전학시키더니 이제는 점점 경쟁이 벌어져서 초․중등학생의 34%가 조기유학을 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학비는 꼬박꼬박 대줄테니 부디 공부만 잘하라는 식의 막연하고 감상적인 유학인 것이다.
때로는 감수성 많은 어린 자녀를 기숙사에 넣고 눈물로 헤어지는 엄마도 있고 아예 학교 옆에 방을 얻어 함께 살림을 하면서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 홀로 떨어진 아버지는 그래도 유학이 과외공부보다 돈이 덜 들고 학교에서 억울하고 아니꼬운 꼴을 보지 않아서 좋다고 자위하면서 고독을 참는다. 마침내 한국의 교육열 높은 부모는 유대인 부모에 비유되면서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조만간 한국은 선진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분야별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가발전을 선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보내는 쪽의 희망사항이다. 누가 한국부모의 이러한 교육열을 탓할 수 있으랴. 그러나 현지의 받는 쪽에서 보는 현실은 자식이 부모의 희망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환경과 여건이 너무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얼마전 뉴욕대학과 하버드대학을 매주 왕복하면서 가르치느라 매우 바쁠 때 많은 한국인 학부모들이 자녀의 장래와 교육을 위하여 상담을 요청해오는 것을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경우마저도 그들이 털어놓는 고민과 마음고생은 참으로 나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을 미국의 친척에게 맡기거나 돌보아주기를 부탁하지만 생활에 쫓기는 미국이민세대는 그럴 여유가 별로 없다. 한국에서 귀엽게만 자란 아이의 씀씀이는 이민 온 친척과 또래의 사촌들을 경악시킨다. 기숙사 방은 썰렁하고 친구도 없으며 부모는 오직 전화로 공부 잘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상담시에 보여주는 성적표를 보면 불안정한 심리상태와 취약한 입장을 반영한 탓인지 들쭉날쭉이다. 엄마가 한국에 간 사이에 본 시험성적은 바닥을 치는 경우가 많다. 얼마 후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희미하게 되어 버린 채 대학에 들어가거나 영어라도 건지는 것만이 유학목적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경험자나 전문가와 상의하여 준비를 갖추어 유학온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내 나라의 교육을 비난하면서 자녀의 손을 잡고 건너온 이국 땅에서 정작 창의적이고 다양한 미국교육의 장점을 활용하거나 학생자신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사실 우리와 견줄만한 다른 나라에는 이와 같은 경쟁적, 낭비적, 맹목적 조기유학은 없다. 정부는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많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유학정책은 아예 방기상태이니 크게 기대할 것도 없다.
자식의 교육을 생각하면 이민가고 싶다는 학부모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잘한 자식과 그 부모를 부러워하거나 그들을 개선장군인양 흥분하여 찬양하는 언론에 부화뇌동하기 전에 좀더 찬찬히 조기유학의 동기와 목적, 학생의 장래, 교육현장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들을 이끌어주고 장차 활용할 대책을 강구함이 시급하다. 이들은 21세기를 살아갈 주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