便宜行政의 문제점, 월간 해양한국 통권 199호, (재)한국해사문제연구소, pp.65, 1990. 4

宋 相 現 (서울法大 교수)
개발도상국에서 관료집단(테크노크래트)이 지닌 임무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잘 안다. 그들은 통치자의 경제사회발전 방침에 맞추어 계획을 짜고 민간부문을 독려해가면서 이를 집행하며 결과를 확인 및 평가해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나온 30년간 관료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할만한 점이 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국제화,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니 정부 관료들의 계몽적 역할이나 그들이 앞장서서 무조건 한 방향으로 끌고 나아가는 기능은 후퇴하고 있다. 여론을 수렴하고 민간창의를 북돋아서 민간주도로 발전해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경험을 보면 커다란 발상의 전환이 없어서인지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감이 있다. 관료집단이 구태의연하여 책상 위에서 헛공론으로 작성한 지침을 당면정책이라고 발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김장철에 배추가 풍작이어서 트럭 운반비도 건질 수 없다고 아우성이면 ‘한 집당 배추 열포기 더 먹기 운동’을 전개한다고 발표하고, 수도권 인구분산책을 다각도로 수립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대학교수들이 대부분 고등고시 위원으로 임명되는 것도 수도권 인구집중의 원인이 되므로 각종 시험위원은 대부분 지방대학 교수들을 임명해야 된다는 방침을 결정한 것 등은 편의행정의 대표적 예이다. 또한 경제성장률을 비롯한 정부의 각종 경제분석지표를 수차례 고쳐도 아무도 책임을 지는 공무원이 없다. 최근의 경제적 침체와 혼란에서 밤낮 급할 때마다 동원되는 기관은 국세청이다. 걸핏하면 세무사찰로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활동을 바로잡겠다는 발상이야말로 편의행정의 白眉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주택의 절대적 부족과 인프레가 근본적 배경이긴 하나 실태파악이나 현장확인도 없이 공연히 법을 고쳐서 건물임대차기간을 2년으로 하겠다는 바람에 집세가 폭등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되지도 아니하며, 갑자기 국세청으로 하여금 세무조사를 한다는 것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나라의 행정의 현주소이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이나 동회 등이 신고를 받아서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관계를 조정해준다고 하니 司法業務까지도 하겠다는 뜻인가 보다. 그러나 종래에 있던 借地借家調停法을 폐지하는 대신 민사조정법이 작년 연말에 통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법의 통과이전부터도 전국의 각 법원 내에 법관이 주도하면서도 각계각층의 인사로서 위촉,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있어서 이와 같은 분쟁을 조정해주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법률구조공단도 전국적 조직을 통하여 이와 같은 서민분쟁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한 김에 국세청으로 하여금 민사분쟁처리에 개입을 시키는 무리를 범하고, 심지어는 토지나 건물의 임대나 전세에 관한 분쟁을 전담하는 기구를 신설해야 된다는 기구신설타령이 등장하기도 한다.
요컨대 立法府와 司法府를 行政府에 사실상 예속시킨 상태에서 行政萬能的 發想으로 국가정책의 수립, 집행, 평가를 독단하기를 30여년이나 하고 보니 실정도 모르는 공무원의 즉흥적 생각을 붓끝으로 옮기는 편의주의 행정에 너무도 깊숙이 安住하여 버렸고, 이것이 이제 民主化의 正道를 걷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