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方으로 가는 길, 월간 해양한국 통권 198호, (재)한국해사문제연구소, pp.49, 1990. 3

宋 相 現 (서울法大 교수)
1960년대 말경 뉴욕시에서 변호사를 하던 중에, 당시 미국에서도 드물게 소련 해운회사의 법률문제를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이 회사 사람들은 사소한 것까지도 본사의 승인을 받아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지나치게 느리게 돌아갔다. 그후에 변호사비용의 지급도 몹시 지연되어서 마치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한 업체가 여러번 대금지급을 사정한 끝에 만기가 반년이 넘는 어음 한장을 겨우 받아쥐는 경우와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해에 소련을 여러 날 여행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각종 시설도 구경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때 20여년 전의 거래에서 왜 소련인들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지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세계 초강대국인 소련 사람들의 소비생활수준과 피부로 느끼는 경제현실을 보고 그 물자부족과 경제혼란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北方外交에 힘을 기울인 결과 이제는 소련과 영사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되었고, 기업들도 앞을 다투어 큰 뜻을 품은 채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나라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지 70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초보적 센스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국가에 의하여 직장이 강제로 지정․배치되는 환경에서 어떻게 민간주도로 기업을 이끌어 가고 어떻게 動機를 부여할 수 있는지 잘 모르며, 經營管理에 대한 기본적 개념도 없는 듯하다. 거기에다가 外貨가 극도로 귀하고 공정환율과 암시세가 약 30배이상 차이가 나며, 사회경제적 하부구조가 機能不全症에 걸려있다. 기업활동을 하기 위한 각종 여건의 미흡함은 유럽제국과 큰 차이가 없겠으나 이들 나라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서구문명사회의 중요한 일부로서 자본주의가 발달된 본 고장이기 때문에 40여년간의 공산독재가 무너지고 나면 아직도 자본주의적 경영의 경험과 기술축적이 있어서 경제재건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직 하다. 이것이 소련과 東歐의 차이점이 아닐까.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당장 합작투자를 성립시키고 공장을 건설하여 제품을 생산하려는 계획은 저들 정부나 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기만하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을 듯이 보이지만,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친지 수년이 되도록 경제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이것이 커다란 정치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크게 안심할만한 접근방법은 못될 듯하다. 따라서 소련과의 거래에 있어서는 초보적 단계로서 그들이 극도로 부족한 생활필수품을 조금씩 수출하고 풍부한 원료를 값싸게 사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거래를 반복하는 동안 이와 병행하여 그들의 언어와 생활습관 등 문화적 측면에서의 연구에 노력해야 하며, 그런 연후에야 우리측의 투자진출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치체제는 물론이고 언어 생활양식 기후 교통 衣食住 기타 생활환경이 너무도 다르고 劣惡한 상황 속에서도 북방개척의 첨병으로 나가서 애쓰는 외교관이나 정부기관 및 각 기업의 주재원에 대하여 그들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각별한 배려를 하여야 하겠고 그들의 귀중한 현장경험과 정보를 종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